코스 : 경교장 → 해공 신익희 가옥 → 여운형 집터 → 송진우 집터 → 장면가옥
경교장의 전경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던 백범 김구(1876-1949)가 생활하며 집무실로도 사용했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때문에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의 사저인 이화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부주석을 지냈던 김규식(1881-1950)이 머물던 삼청장과 함께 해방전후 가장 주요한 정치적 공간으로 꼽힌다.
첫 국무회의가 열렸던 경교장의 응접실(좌)과 공식만찬이 진행됐던 귀빈식당(우)
당시 임시정부 진영의 주요 인사들이 백범을 중심으로 집결하다보니 경교장은 자연스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로도 활용됐는데, 역사적인 첫 국무회의가 열렸던 1층 응접실과 식당 등을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관심을 모았다. 2층은 백범의 침실과 집무실이 있던 공간으로,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할 당시 앉아있던 의자와 총탄자국을 그대로 재현해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지하전시실에는 마지막 순간 백범이 입고있던 피 묻은 옷이 그대로 전시돼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김구가 서거 당시 입었던 옷(좌)과 집무실 창문에 재현된 총탄 자국(우)
전화 : 02-735-2038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운영시간 : 09: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찾아가기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해공 신익희 가옥의 전경
최근 많은 여행자들이 찾고 있는 서촌의 깊숙한 골목에 또 한명의 민족지도자, 해공 신익희 (1894-1956)의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나눠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강인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제자들과 함께 3·1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데 일조했던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엔 백범과 함께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선도하기도 했고, 남한의 독립정부 수립 이후엔 국회의장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도 나서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신익희 가옥의 내부 전경
효자동에 자리한 그의 가옥은 'ㄱ'자 형태의 사랑채와 'ㄴ'자 형태의 안채가 만나 오붓한 안마당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경기도 지역에 다수 지어졌던 도시 한옥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인상을 풍긴다. 한쪽 벽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시 선거포스터가 붙여져 있는데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구호가 흥미롭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9-7
찾아가기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몽양 여운형의 집터에 세워진 표지석
"장래의 조선은 청년의 조선이다"라고 외치며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맨몸으로 부딪혔던 몽양 여운형 (1886-1947)은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쳐 일본인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재직 당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채로 신문을 발행한 것이 빌미가 되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이때 그를 지지하는 주주들이 계동에 집을 마련해줘 이곳에서 1947년 암살되기까지 10여 년을 생활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계동 가옥은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반 토막이 나고 지금은 칼국수집으로 변해 그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식당 맞은편에 몽양의 집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돌이 자리해 자유와 독립을 꿈꾸는 영원한 혁명가였던 그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40-16
찾아가기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고하 송진우의 집 터
몽양 여운형과 함께 당시 동아일보 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고하 송진우(1887-1945) 또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했다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동아일보를 강제로 폐간 당하고 일본에 협력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동아일보는 내 입이요, 내 귀며, 호흡하는 코요, 손과 발인데, 그 전부를 잘린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느냐"며 거절해 대쪽같이 꼿꼿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후대의 존경을 받고 있다.
고하 송진우의 집터에 세워진 안내판
그러나 1945년 광복과 함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안에 대한 반대운동의 방법을 두고 다른 진영과 갈등하다 원서동 자택에서 총에 맞아 암살 당한다. 그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있는 옛 집 위에는 이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지만 해방공간 속에서 분명한 자신의 노선을 구축했던 그의 정신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117
전화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장면가옥의 전경
신익희와 함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장면(1899-1966)은 제2공화국의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집권한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5·16 군사정변을 만나면서 윤보선처럼 연금생활에 묶이게 된다.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한 그의 가옥은 현재 등록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한식과 양식이 골고루 조화를 이룬 1930년대 근대 건축물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한번쯤 둘러볼만하다.
한옥과 양옥이 조화를 이룬 장면가옥의 내부
장면이 생활하던 당시 모습 그대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는 이곳은 그가 사용하던 가구는 물론 만년필과 명함 등의 유품도 다수 전시되고 있다. 특히 그가 사용하던 여권은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받은 최초의 외교관 여권이어서 발급번호가 '1'로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장면가옥의 내부 전시관(좌)과 대한민국의 첫 번째 외교관 여권(우)
전화 : 070-8239-1063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5길 53
운영시간 : 10:00~18:00(동절기 10:00~17:00)
찾아가기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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