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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예술가들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가는 고품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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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조형물
성북구 돈암동사거리에서 정릉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아리랑고개’라 부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인 춘사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 이곳에서 크랭크 인 해 붙은 지명이라 전해진다.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속에서 제작ㆍ상영된 ‘아리랑’은 우리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조선시대 무인, 그것도 하급 무관들과 병사들이 주로 거주했던 동대문은 한국전쟁 이후 아시아 최대의 의류시장으로 발전했다. 동대문 시장의 배후지로 등장한 창신동 골목어귀로 들어서면 하루 종일 봉제공장 재봉틀소리가 진동한다. 이곳에서 국보급 예술가 두 분의 발자취를 더듬게 된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과 박수근 화가가 이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답십리고미술상가는 무명 예술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옛 조상들의 장인 정신이 깃든 도자기와 고서화, 생활용품들로 가득한 이곳은 거리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박수근작품과 답십리고미술 상가풍경
여행지도
여행지도
 

 
#1 '레디 고!' 최초의 우리 영화 '아리랑'이 시작된, 아리랑고개
나운규거리 풍경
아리랑고개에서 춘사 나운규의 큐 사인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성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감독이었다.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 일제강점기에 3ㆍ1운동, 독립군비밀조직 등에 가담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단역배우로 시작했던 그는 1926년 영화 ‘아리랑’을 제작했다.

아리랑씨네센터 전경

이 영화는 그해 10월 단성사에서 성황리에 개봉됐다. 나운규는 직접 영화주제가 ‘아리랑’을 편곡했고 변사역까지 맡았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민요 아리랑이 전국으로 전파됐다. 영화 관람을 마친 관객들은 주제가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고 한다. 아리랑 고갯길은 성신여대입구 6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해 아리랑고갯 마루에 들어선 아리랑시네센터까지 1km 정도 이어진다. 해마다 5월이면 이 길에서 아리랑 축제가 열려 한국영화의 개척자인 나운규의 삶과 영화를 반추하게 된다. 영화의 거리 중간 즈음에 나운규 테마공원이 자리한다. 나운규의 유작과 영화 포스터 그리고 그의 모습들을 담은 그림이 타일로 장식돼 있다. 아리랑 고갯마루에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와 아리랑 정보 도서관이 들어섰다. 일반영화 개봉관과 독립영화 개봉관을 갖춘 건물 입구에 나운규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아리랑씨네센터 내부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아리랑로 82
전화번호 : 02-3291-5540(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홈페이지 :
cine.arirang.go.kr(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2 백남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더듬다,백남준 집터
백남준의 집터 풍경
창신동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집터가 있다. 그러나 집은 사라졌고 종로구민회관 근처 ‘청기와 능이버섯백숙집’ 담벼락에 ‘예술가 백남준의 집터’라는 표지판만 남아 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어린 시절을 이곳 창신동에서 보냈다. 그는 일찍이 일본유학을 거쳤고 유럽과 미국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비디오아트를 예술 장르로 이끈 그는 1977년 위성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백남준의 선친은 당시 창신동의 내로라하는 거상이었다고 한다. 아흔아홉 칸 기와집으로 ‘큰대문집’이라 불렸던 그의 집터에 남아있는 기와집은 당시의 가옥이 아니라 아쉬움이 다소 남는다. 하지만 이 일대가 거의 그의 집터였다는 이야기, 전 세계를 무대로 예술혼을 불살랐던 그가 생전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창신동을 꼽았다는 후일담은 창신동 주민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작품들은 세종문화회관 로비를 비롯 국내 유수기업의 사옥과 여러 미술관에서 소장ㆍ전시돼 있다. 백남준의 작품세계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폭넓게 만날 수 있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불리는 이 아트센터는 돌조각을 비디오아트처럼 이어붙인 건물이다. 달팽이집처럼 곡선을 그리는 독특한 돌탑이 예술이다.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종로 53길 일대
 
 
 
 
백남준아트센터 실내전시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6
전화 : 031-201-8500
홈페이지 :
www.njpartcenter.kr
 

 
#3 소박한 서민들의 삶이 그림처럼 남아있는,박수근화가의 집
박수근의 집과 작업실지하철 5호선 동묘 앞 역 창신동 거리에 서양화가 박수근이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살며 작품을 그리던 작업실이 남아있다. 그는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린 돈으로 처음 이 집을 샀다고 한다. 1953부터 1963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 집은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나목>에도 등장한다. 그의 집은 현재 허름한 국밥집으로 변했다. 국밥집은 그가 그림을 그리던 작업실이고 그 옆 빈대떡집은 화가의 안방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 형태는 거의 변했지만 안방에서 비좁은 공간을 지나 작업실로 이어지는 구조,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장독대가 있는 풍경은 그때 그대로라고 한다.
박수근의 집과 작업실모습
6.25 전쟁이후 창신동은 인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주거지였다. 화가의 집터에서 바라보이는 창신동 언덕배기에 절개지가 있다. 이 터는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이 있던 곳이다. 그곳의 돌을 캐어 서울역과 서울시청 등 공공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화가는 창신동 채석장을 보면서 그의 그림에 화강암 기법을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채석으로 돌산이 부숴진 절개지 위로 허름한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들어서 있다. 서민들의 삶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가난한 서민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박수근 화가의 그림을 떠올려준다. 박수근미술관은 그가 태어난 강원도 양구읍에 들어서 있다. 미술관 전시관에서 화가가 생전에 쓰던 유품들이나 기록물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는 창신동 집 대청마루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눈길을 끈다.


가는 방법 : 지하철 5호선 동묘앞역 6번 출구에서 직진, 삼우웨딩홀을 지나 대로변 우측에 ‘여기 어때 국밥집’이 있다. 이곳이 박수근의 작업실 겸 집이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지봉로 11 
 
 
 
박수근미술관 풍경주소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131-1
전화 :033-480-2655
홈페이지 :
www.parksookeun.or.kr
 
 
#4 무명 장인,조상의 얼이 담긴,답십리고미술상가
답십리고미술상가 공예품들
답십리고미술상가는 고미술상가 2동과 5동, 6동, 우송빌딩, 송화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조상들의 숨결이 배인 도자기를 비롯, 고서화, 민속공예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국내 최대의 고미술상가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청계천 8가, 황학동, 이태원 등지로부터 이전한 고미술상점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고미술로를 걸으면 고려청자에서부터 여인네들이 규방에서 만들어 낸 자수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에 눈길이 쏠린다. 전국 고미술상의 15%가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한다. 상점마다 전시된 고미술품들이 주인의 안목을 그대로 드러낸다. 투박한 듯 소박한 목가구와 우리 문화의 풍류를 그대로 내비치는 고서화들을 대하면 삶의 여유가 살아난다. 비좁은 점포는 마치 작은 박물관에 들어선 듯 조상들의 솜씨를 가득 펼쳐 보인다. 공예품들
답십리고미술상가에서는 고가의 골동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생활용품을 인사동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능방법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1번 출구에서 고미술로가를 통해 고미술상가 2동 시작.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99(답십리 고미술협회)
전화번호 : 02-2249-0336(답십리 고미술협회)
휴무일 : 일요일, 공휴일
홈페이지 :
www. gomisu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