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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3·1운동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억하며 걷는길

서울 즐기기 추천코스

 
대한문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탑골공원에 운집했다. 공원 내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식을 가진 시민들은 종로를 거쳐 고종의 장례절차가 진행되던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나아가 만세운동을 펼쳤다. 종로 네거리의 보신각 앞에서도 타종시간에 맞춰 일제히 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조선시대 때 집권층 양반이 모여 살던 북촌과 종로 일대는 3∙ 1운동이 태동한 주 무대로 기록된다. 독립선언서가 모의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독립에 대한 굳은 신념이 타올랐다.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당당하게 거행하자 시민들도 거국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같은 1919년 3월 1일의 모습을 그리며 독립만세 시위 현장을 찾아 길을 나선다. 탑골공원에서 시작해 종로를 따라 보신각과 태화관 터, 보성사 터로 추정되는 조계사 극락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자주독립의 의지가 누구보다 강렬했던 고종의 일대기가 서린 덕수궁을 돌아본 후 서울역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앞을 지키는 강우규 열사의 동상 앞에서 우국충정을 불태우며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투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여행정보

 

코스 : 탑골공원 → 종로(보신각 3∙ 1운동 기념비, 보성사 터, 태화관 터, 중앙보통학교 숙직실 터) →

      덕수궁 대한문 앞(환구단) → 서울역 광장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독립문)
소요시간 :4~5시간

코스 1독립선언을 시작으로 3.1운동의 함성이 울려퍼진, 탑골공원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탑골공원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일제의 강제 침략으로 식민지로 전락, 온갖 수난을 겪던 백성들은 조선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펼치고자 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불참한 가운데 학생들을 비롯한 군중들이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민족대표들이 예정에 없이 장소를 인사동의 태화관으로 옮겨 선언식을 미리 가졌기 때문이다. 학생대표가 공원 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운집한 군중들은 하나같이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삼창을 외친 시위대는 공원을 빠져나와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도심 전체로 확대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탑골공원은 대한제국기에 세워진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이곳에는 원래 조선 태종 때 세워진 원각사가 있었다.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원각사비(보물 제3호),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받침대 등이 당시의 유물로 보존돼 있다. 3·1운동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삼일문을 통해 공원으로 들어서면 3·1운동 기념탑을 비롯 3·1운동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부조와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만해 한용운의 시비등을 만나게 된다.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공원이어서 인사동이나 종로를 여행할 때 들르기 좋다.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며 길이 보전해야 할 역사 공간이자 아늑한 휴식처이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전화 : 02-731-0534
시내버스 :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1코스에서 2코스로 가는 방법
탑골공원에서 종로1가 방면으로 도보로 이동, 종각역사거리 동남쪽 모퉁이에는 보신각이 있다.
코스 2조선의 자주독립 의지가 담긴 독립선언서가 잉태된, 종로

종로 일대는 1919년 3∙1운동을 촉발시킨 독립선언서가 잉태된 현장이다.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옛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에서 조선의 자주독립 의지를 담은 독립선언서가 모의되기 시작했다. 3·1 운동이 발발한 당일 보성사에서 <조선독립신문> 창간호가 발간됐다.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민족대표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3월 1일 종로 보신각 앞에 집결한 군중들은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보신각은 조선시대에 도성의 문을 여닫거나 위중한 일이 있을 때 울리는 종이 걸려있던 곳이다. 보신각 앞 정원 일각에는 ‘3∙1 독립운동 기념터 비’가 세워져 있다. 보신각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북측의 종로타워빌딩 방면으로 걷다가 우측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흰색의 태화빌딩이 나온다. 이 건물 앞에 ‘태화관 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태화관은 3·1운동 당시 인사동의 유명 요리집 명월관의 분점이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은 한용운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옛 보성사 터는 현재 조계사 경내의 극락전 앞마당으로 추정된다. 보성사는 당시 보성중학교 인쇄소로 1919년 2월27일 독립선언서 2만 1천매를 인쇄했던 곳이다. 3월 1일 당일에는 독립선언의 전말을 기록한 <조선독립신문>을 찍어내기도 했다. 일제 검경에 의해 신문 발행인이 체포된 이후에는 장소를 옮겨가며 <조선독립신문>을 제8호까지 지속적으로 발행했다.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곳곳에 남아있는 3·1 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전화 : 02-731-0114
가는방법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 도보로 이동
 


 
TIP
3·1운동 의지가 움튼 곳,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 터 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 교정에는 ‘옛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 터’라는 역사 유적지가 있다. 1919년 1월 일본 동경유학생 송계백은 학교 숙직실에서 와세다대학 선배인 중앙학교 교사 현상윤, 교장 송진우와 함께 비밀 모임을 가졌다. 일본 유학생들의 거사계획을 알리고 <2∙ 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이 모임은 3∙ 1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날을 기념하기 당시의 숙직실 터에는 ‘3∙ 1운동 책원비’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숙직실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아담한 한옥에는 ‘삼일기념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가는 방법 :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약 800m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
 


 
2코스에서 3코스로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청역에서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도보 이동
코스 3고종의 승하를 애도하며 3·1운동의 함성이 고조된,
덕수궁 대한문 앞

1919년 3월 3일은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의 인산일로 예정돼 있었다. 3·1운동 당일 덕수궁 대한문 앞은 고종의 승하를 애도하며 자주독립을 외치는 인파로 들끓었다. 고종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불안해진 국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임금이었다.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자리에 오르는 등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 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 시위대는 종로를 거쳐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까지 전진했다. 고종의 인산일에 맞춰 덕수궁 앞으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가담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고종황제의 빈전 근처까지 들어가 조문을 하거나 덕수궁 인근에 자리한 미국총영사관으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1918년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내세웠던 민족자결주의에 관한 연설이 독립선언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위대 일부는 남산에 위치한 조선총독부로 달려갔다. 소공로를 통해 돌진하던 시위행렬이 지금의 한국은행 앞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 앞을 지나던 시민들이 합세하는 바람에 시위대 규모는 거대해졌다. 한 차례 격돌을 거친 시위대는 일제 검경의 강제 해산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산발적인 시위를 이어갔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머물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나와 고풍스러운 한국은행 건물과 백화점이 마주한 명동거리로 걷는다. 평화로 운 N서울타워의 풍경을 바라보며 3·1운동의 맹렬한 독립 정신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전화 : 02-771-9951
가는방법 : 지하철 1호선 시청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분
 


 
TIP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이 열렸던 환구단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서울광장을 가로지르면 환구단의 정문이 보인다. 지금의 웨스틴조선 호텔 내에 자리한 환구단터에서 1897년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렸다. 환구단이 있던 곳에는 일제에 의해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이 들어섰다. 해방 이후 철도호텔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이 들어서면서 일대는 완전히 훼손되고 말았다. 현재 환구단은 사라지고 없지만 웨스틴조선호텔 정원 내에 천신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와 석고각이 남아있다. 한때 훼손 멸실됐던 환구단 정문도 복원돼 있다.
 

 
3코스에서 4코스로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지하철 탑승 후 서울역에서 하차, 1번 출구에서 도보 1분
코스 4우국충정에 불타는 강우규 열사가 지키는, 서울역 광장
 

3·1운동이 시작된 이후부터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서울역광장에서는 3월 5일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가 펼쳐졌다. 조선의 자주독립을 간절히 열망하며 운집한 군중을 뚫고 인력거를 탄 학생대표가 ‘조선독립’이라 쓴 깃발을 휘두르자 군중들이 일제히 이 대열에 합세했다. 붉은 완장을 두른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자 광장을 오가던 시민들도 시위대에 가담했다. 긴급히 출동한 일제 검경들이 시위 지도부를 체포하면서 군중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역은 3·1운동 당시 남대문역이라 불렸다. 1900년 7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생긴 철도 역사로 염천교 부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대문역은 한 때 ‘경성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서울역으로 개칭됐다. 서울역은 2004년 1월 새로운 민자 역사가 출발하기 전까지 경부선ㆍ경의선 등 주요 간선열차의 시발역인 동시에 종착역으로 이용됐다. 옛 서울역사는 현재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역사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붉은 벽돌과 청동빛 돔 양식의 지붕이 고풍스럽다. 2층에 자리한 역사전시실은 서울역의 역사를 한눈에 돌아보는 전시공간이다. 서울역광장 앞에는 강우규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강우규는 1919년 3.1 독립운동 기간 동안 만주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인물이다. 1919년 서울역광장에서 일제 총독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일제 경찰에 검거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가는방법 :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하차 후 1번 출구로 이동, 도보 1분
 

서울역 역사
 
4코스에서 5코스 가는 방법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정류장에서 간선버스 702B 탑승 후 독립문역에서 하차. 도보 5분
코스 5독립운동가들의 수난사를 돌아보는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45년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들이 수난을 당했던 곳이다. 희생자들 중에는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등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인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현장이기도 하다. 한동안 서울 교도소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던 이곳은 1998년 11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역사관에는 옥사 7개 동과 사형장, 전시관(보안과 청사)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중앙사와 제12옥사, 공작사와 사형장을 둘러보며 역사관 관람이 이어진다. 상설전시관의 지하고문실에는 일제강점기 때 애국지사들이 모진 고문을 당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공작사는 수감된 애국지사들의 수감생활과 고문, 재판, 사형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형장 앞에 서 있는 ‘통곡의 나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수감자들이 비통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나무로 전해진다. 유관순지하옥사와 망루 등을 차례로 돌아보며 일제 강점기에 애국지사들이 겪었던 모진 수난을 가슴에 새겨본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움이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현장이다.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전화 :02-360-8590
가는방법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서대문독립공원 방향 도보 5분
 

서대문형무소
 
TIP
자주독립정신의 상징, 독립문& 독립관 독립문은 민족의 기금으로 세워졌다. 1898년 조선 독립협회는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어버린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문 현판을 걸었다. 독립문 뒤에는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박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는 3. 1독립 선언 기념탑과 독립관도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화관이라 불렸다. 중국 사신 접대용이었다. 서재필 박사는 이곳을 독립관이라 부르며 독립운동의 기지로 사용했다. 일제에 의해 헐린 것을 1997년 복원했다.
 
위사진 독립문, 아래사진 독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