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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스토리텔링] 서울에서 꽃피운 고대왕국 한성백제

서울 즐기기 추천코스

 
[서울 스토리텔링] 서울에서 꽃피운 고대왕국 한성백제
 
근초고왕을 만나는[한성백제 이야기길]
한성백제 왕성 이야기 탐방로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훌륭한 산책코스중 하나입니다. 한강과 가까이 있어 도보산책과 자전거투어를 하기에도 좋고, 탁 트인 시야와 푸른 녹지가 조성되어 있어 가족, 연인, 친구들과 가벼운 도시락을 나누며 도심 속의 한가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어서 그냥 무작정 걸어도 좋은 곳이죠. 그런데 바로 이곳이 한국의 고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문화유적지이고 백제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성백제 이야기길'은 고즈넉한 산책로를 걸으며 2천 년 전 백제가 꿈꾸던 서울(한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탐방로의 대부분이자 가장 핵심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두 개의 토성구간 입니다. 바로 천호역에서 나오면 바로 만나는 풍납토성과 올림픽공원으로도 잘 알려진 몽촌토성이 그 곳입니다. 이 두 개의 토성은 바로 한국의 고대국가로 번성했던 백제의 왕성인 것이죠. '한성백제 이야기길'은 이 두 개의 백제왕성을 연결해주는 코스로 서울을 기반으로 웅진 했던 백제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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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지도

 백제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서울의 한강을 중심으로 건국해 660년에 멸망하기까지 약 7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함께 한반도에 삼국시대를 이루었으며,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나라입니다. 백제가 차지한 한강유역은 일찍부터 철기문화와 농경문화가 발전해서, 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살았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예술이 발전하였습니다. 또 서해바다로 이어진 한강을 끼고 있던 백제는 조선기술을 발전시켜 동북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답니다.
백제는 4세기경 '근초고왕' 때에 이르러 가장 넓은 영토와 외교적 역량을 가진 강력한 나라가 되었는데요. 그 영향력이 한반도의 북쪽으로는 평양에서 남쪽으로는 가야에 이르렀고, 일본의 규슈 지역, 중국의 요서, 산둥 지역까지 그 영향력을 뻗쳤답니다.풍납토성은 바로 이 한성백제의 초기 왕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몽촌토성은 이후에 군사 방어적 목적으로 추가로 건축된 왕성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1997년 풍납토성에서 대규모의 유물이 출토되기 전까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백제의 성이기는 하지만 그리 중요한 성일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풍납토성에서 대규모의 백제의 왕궁유물이 출토되면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궁금해 했던 백제 초기의 왕성이 1,600여 년 만에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죠. 그래서 이 탐방로의 구간은 최근까지도 활발한 발굴과 연구조사가 진행 중이랍니다.

한성백제 이야기길 투어코스
한성백제 이야기길 투어코스( 코스길이 8Km, 소요시간 : 약 360분)


천호역 ⇔ 미래마을 ⇔ 풍납토성 ⇔ 칠지도 상징물⇔ 몽촌토성 ⇔ 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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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을 만나는[한성백제 이야기길]

 한성백제 이야기길의 동선은 길 바닥에 노란색으로 색칠해 진 '매 문양'표시나, 곳곳에 걸린 리본으로 확인해 주세요.
 
 
 
한성백제 이야기길 안내(전체 둘러보기)
 풍납토성은 BC 1세기 ~ AD 3세기경, 몽촌토성은 AD 3~4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건축된 시기와 주변 환경이 다르기도 하지만 두 개의 같은 백제 초기의 왕성이라고 하기에는 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뭐랄까 풍납토성은 소박하고 정겹다면, 몽촌토성은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랄까?풍납토성은 강동구 풍납동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에워싼 조그만 언덕을 중심으로 소박한 산책로가 정겹지만 조금은 방치된 듯 보이기도 하는데요. 반면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안에 위치해 있어 세계 어느 도심공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두 곳이 모두 백제 초기의 중요한 왕성인데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현대사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더군요. 그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탐방로를 걸으며 들으실 수 있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한성백제 이야기길'을 걸으며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보면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몽촌토성에 비해 초라하고 볼품 없다고 생각했던 풍납토성은 눈으로 보이는 소박한 규모와는 달리 백제의 위대한 건축기술을 만나는 반전의 매력이 있답니다.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점은 풍납토성의 안쪽은 아직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란 것이었습니다. 지하에 묻혀있던 2천 년 전 백제의 역사가 아직도 하나둘씩 발견되고 연구되고 있어 폼페이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1.풍납토성입구

위치 위치위치 지하철 5,8호선 천호역 10번 출구

소개 소개

<1,600년만에 풀린 백제왕성의 비밀>

4세기경 '근초고왕' 시대에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백제가 5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한 것이죠. 이후 백제의 왕성인 '위례성'은 폐허로 방치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땅 속에 묻혀 1,500년 동안이나 '한성백제'의 역사는 '잃어버린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풍납동의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한성백제의 왕성 유적이 한 사학자에게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과 이후의 발굴과정에서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인 '위례성'이란 학설이 힘을 얻게 되었고, 서울은 백제의 역사를 통해 역사가 2,000년이나 된 고대도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답니다.

 
2.미래마을

위치 위치송파구 풍납동 바람드리길

소개 소개

지금은 공터뿐인 미래마을. 1997년 발굴 당시 이곳에서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이때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풍납토성이 백제의 초기 왕성인 '위례성'이었고, 왕궁 남쪽에는 '제사터'(경당지구)와 연못이, 서쪽에는 군대의 사열장과 활쏘기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이 출토된 유물과 건물터의 흔적을 보면 '위례성'은 당시에 상당히 훌륭한 계획도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궁궐의 모습도 기와와 전돌, 나무기둥을 사용해 고려나 조선시대의 궁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궁궐 가까이에 민가들이 있었고 민가는 대부분 움집 형태의 초가집이었죠.

 
3.경당지구
경당지구

위치 위치송파구 풍납리 토성 136번지

소개 소개

고대나 삼국시대나 중세의 고려, 조선의 유적들 모두 공통적으로 왕궁 가까이에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터가 있습니다. 강북에 조선의 '종묘'가 있다면, 강남에는 백제의 제사터였던 '경당지구'가 바로 그 곳입니다. 이러한 제사터는 바로 이곳이 왕성이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죠. 백제인들은 부여의 시조인 동명과 천지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물로는 소와 말의 머리를 올렸는데, 당시 소와 말은 아주 귀한 동물이어서 가장 귀한 것을 바친다는 의미였습니다.

 
4.성밖 우물지

위치 위치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길

소개 소개

<풍납토성의 해자와 우물이야기>

예전의 역사학자들은 풍납토성은 '해자'가 없어 적의 공격에 취약해 왕성으로는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풍납토성에서 수많은 왕궁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해자'를 찾는 발굴이 진행되었죠. 이 과정에서 풍납토성의 해자는 한강의 지류, 즉 자연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 5세기경에 만들어진 오래된 목조 우물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우물의 발견으로 당시 위례성의 외곽에도 많은 주민이 터를 잡고 살 만큼 위례성이 번성한 도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위례성과 인근에 거주하는 인구가 70~80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1,500년 전에 한 도시의 인구가 이 정도라면 백제의 왕성이 얼마나 번성하고 활발한 도시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5. 풍납토성 남벽
 

위치 위치송파구 풍납동 풍납2동 주민센터 옆

소개 소개

피라미드가 부럽지 않은 풍납토성 건축기술

풍납토성은 그 규모와 건축 기술에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 기술을 뛰어 넘습니다. 풍납토성은 '판축기법', '부엽공법'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만든 나무틀에 체로 거른 고은 흙과 나뭇잎, 그리고 뻘흙을 사용해 시멘트보다 단단한 토성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풍납토성의 규모도 놀랍습니다. 풍납토성은 최대 폭이 40m, 높이 15m, 배 모양의 성곽이 3.5km 길이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공사를 하려면 10톤 트럭 15만 대(150만 톤) 분량의 흙이 필요하고, 연간 200만 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백제가 초기부터 강력한 왕권 국가가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는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던 것이죠.

 
한성백제 이야기길 투어코스
'한성백제 이야기길'의 또 다른 매력은 고즈넉한 도심산책과 더불어 백제의 역사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입니다. 최근 서울시와 송파구가 한성백제를 알리기 위해 놓은 한성백제의 역사문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설치해 놓았는데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잇는 중간지점에 설치된 대형 '칠지도 상징물'은 백제의 화려한 제철기술과 당시 가까웠던 백제와 일본의 고대역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설치된 이야기 패널을 통해서 백제의 인물, 문화, 역사를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죠.
 

6.칠지도 상징물

소개 칠지도 상징물위치송파구립축구장 앞 성동교 아래

위치소개백제의 철 기술의 결정체, '칠지도'

칠지도는 4세기경 백제가 일본에게 전해준 신령한 칼로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일 양국 사학자들이 칠지도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데요. 칠지도가 과연 백제가 일본왕에게 상납한 것이냐, 아니면 백제가 일본에게 하사한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학자들은 당시 백제와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일본서기의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일본이 백제로부터 정치 문화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과 칠지도에 나타난 61자의 명문을 통해 백제의 태자가 일본의 왕에게 '하사'한 물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성백제 이야기길'에서 만나는 칠지도에서 그 답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한일 양국 모두가 인정하는 백제의 뛰어난 철 제련기술의 결정체 칠지도의 비밀을 '한성백제 이야기길'에서 만나보세요

 

 
백제 철 기술의 결정체, 칠지도

고대의 수목 숭배사상과 도교를 상징하는 명검, '칠지도'는 철을 불에 달궈 두드리며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반복해 6개의 가지를 뽑아내고, 금실로 글씨를 새겨 넣어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숙련된 철 제련기술과 질 좋은 철정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칠지도를 두고 백제가 일본에 상납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칠지도에 새겨진 61자의 명문을 살펴보면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문에는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의 왜왕을 위해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요. 이러한 문구는 누가 보아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말입니다. 당시 고대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칼을 보낸다는 것은 그 지역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신뢰를 나타내는 증표였기 때문에, 칠지도는 백제가 왜왕에게 내리는 하사품이며 일본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친선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근초고왕을 만나는[한성백제 이야기길]
7.몽촌토성

한성백제 이야기길 몽촌토성몽촌토성 구간은 잘 꾸며진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듯 걸으며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길을 따라 걷다보면 백제군이 적군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았던 목책을 만날 수도 있고, 백제인들의 삶과 문화를 볼 수 있는 '몽촌역사관'과 '움집터 전시관'도 만날 수 있죠. 또 이야기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었던 한성백제 역사문화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모아 볼 수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이 마지막 코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넓게 펼쳐진 초원과 야생화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인근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과 마천루에 걸친 석양도 빼놓을 수 없는 몽촌토성의 볼거리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근초고왕 시기인 4세기 전후에 축조된 백제의 왕성입니다. '몽촌토성'은 '남한산성'의 산줄기와 한강의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몽촌토성의 호수들 역시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해자'의 흔적입니다. 지금은 지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옛 지도를 보면 몽촌토성의 해자(호수)는 현재의 '석촌호수'까지 이어져 한강의 지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몽촌토성'을 만든 이유에 대해 위례성의 인구가 증가하자 '위례성' 밖에 살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몽촌토성'을 축조했다는 의견과 함께, 초기 왕성인 '풍납토성'이 적의 공격에 취약해 방어성으로서 '몽촌토성'을 새로 건축했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백제는 '풍납토성[北城]'과 '몽촌토성[南城]'으로 구성된 두 성을 기반으로 왕성을 운영하는 강력한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게 된 것입니다.
 
8.몽촌토성망월대
 

위치 위치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안

소개 소개

형제의 나라 백제와 고구려, 원수의 나라가 된 사연

백제와 고구려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고주몽'을 같은 아버지로 둔 형제의 나라입니다. 나라가 나뉘긴 했지만 초기에 두 나라는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복식과 풍습이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제의 9대 왕인 '책계왕' 이후 약 200년간 두 나라는 서로의 왕을 죽일 만큼 원수의 나라가 되어 전쟁을 치릅니다. 두 나라 사이에 있던 '낙랑'과 '대방'이 멸망하면서 두 나라는 국경을 접하게 되었고, 이로써 충돌이 잦아지게 된 것입니다. 4세기경 백제가 강해진 '근초고왕' 시대에는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고구려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절치부심하게 됩니다. 그 후 100여 년 뒤인 '광개토왕',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가 다시 강해지면서, 백제의 수도 '한성'이 단 7일 만에 고구려에 함락되고, 백제의 '개로왕'은 사로잡혀 처형당하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이때 '한성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를 하게 됩니다.

 
창작뮤지컬 '이도한산'
주요 코스 둘러보기 (탐방로 지도상 번호로 확인)
 
9.몽촌역사관
몽촌역사관
 

위치 위치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방이동)

소개 소개

몽촌역사관은 한성백제박물관의 부속시설로 2천년 고도의 역사적 중심지인 서울의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고대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는 어린이대상 박물관입니다. 사적 제 297호 몽촌토성 내에 위치한 몽촌역사관은 1992년 1월 개관하였으며 청동기시대 움집, 백제의 도읍이었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삼국시대 고분군 등 문화유과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어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답니다. 특히 몽촌역사관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및 문화행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놀면서 흥미로운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 관람시간AM 09시 ~ PM 6시



백제인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QR코드
몽촌역사관에는 백제인들의 다양한 생활과 놀이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백제인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병속에 화살을 던져 넣는 '투호', 나무주사위를 던져 노는 일종의 복불복 놀이인 '저포'와 '위기' 즉 '바둑'을 주로 즐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둑판, 바둑알 하나하나가 백제공예의 예술성과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백제의 바둑판과 바둑알이 일본에 남아있습니다. 그 외에도 주로 부녀자들이 즐겨 놀던 주사위놀이인 '악삭'과 지금의 핸드볼과 비슷하게 공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 '농주' 등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놀이들은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함께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전시관에서는 볼 수 없지만 백제는 주변국가에 '매의 나라' (응준鷹準, 응유鷹遊)라고 불릴 정도로 매와 관련이 깊은 나라입니다. 백제인들은 매사냥을 좋아했고 일본에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또 매의 문양을 금동관과 칼, 장신 구 등에 새겨 넣어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10. 움집터전시관
움집터전시관
 

위치 위치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방이동)

소개 소개

몽촌토성의 동문 남쪽 성벽 위에는 움집터 전시관이 있습니다. 1988년에 올림픽공원 조성당시 발견된 4개의 움집터와 저장구덩이를 발굴 조사하여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전시한 곳입니다. 긴 네모꼴의 1호 움집을 쓰다가 그 위에 육각형의 2호 움집을 만드는 바람에 1호의 흔적은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3,4호 움집도 비슷한 형태이죠. 이들은 모두 전형적인 백제의 육각형 모양의 움집으로 백제인의 주거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움집 안 북동쪽 모서리에는 온돌 형태의 화덕시설도 볼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백제인들의 삶의 흔적을 직접 만나보세요.

시간 관람시간AM 09시 ~ PM 6시



고대의 백제인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요? 


밥상백제인들은 '한강'의 혜택으로 풍요롭고 훌륭한 먹거리 문화를 창조해 냈습니다. 백제인들은 찐 밥과 김치와 젓갈 같은 발효음식과 소금으로 간을 한 음식을 많이 먹었고, 술과 떡을 빚어 먹기도 했으며, 또 해산물과 회를 즐겨먹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한식과 꽤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먹는 한식이 상당 부분 백제의 식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백제인들은 한국 전통의 의식주 문화 원형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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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한성백제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위치 위치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방이동 88-20)

소개 소개

한성백제박물관은 한성백제시기 풍납토성의 발굴유물을 전시하고 2천년 고도 서울의 문화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자 문화공간입니다. 지하 2개 층과 지상 2개 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은 풍납토성의 성벽단면과 서울의 선사시대 이후 한성백제시기까지의 서울의 역사와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기획전시와 문화체험활동 및 학술연구, 교육, 이벤트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의 교육 문화공간으로서도 훌륭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죠.

 

해양강국 백제의 조선기술

백제는 뛰어난 조선기술을 바탕으로 한강을 이용, 서해와 남해를 통해 탐라국, 일본, 중국과 활발하게 교역을 했습니다. 당시의 백제의 조선술은 중국, 일본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고, 주변국과의 문화적 교류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풍납토성~몽촌토성에 이르는 '한성백제 이야기길'의 마지막 코스인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한성백제의 역사, 문화, 복식 및 식생활 문화, 풍납토성의 규모와 건축기술, 백제의 조선 기술 등 탐방로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에 관련된 모든 유물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맞는다면 주말에 열리는 뮤지컬 이도한산 공연도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죠)

 

시간 관람시간AM 09시 ~ PM 9시 (단 토, 일, 공휴일은 AM 09시 ~ PM 7시, 11월~2월 AM 09시 ~ PM 6시)

마무리하기!

자, 어떤 길을 걸을지 정하셨나요?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담긴 여행길!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