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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살가운 동네가 있다. 대흥동이 그렇다. 주민들과 나누는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 동네. 카페 주인이 손님의 일상을 기억하고, 동네 어르신들은 자연스레 말을 건넨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자라난 나는 이 동네만의 환대를 기억한다. 이웃과의 인사가 당연한 곳. 옹기종기 모인 주택가들에는 여전히 오래간 터를 지켜온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경의선 숲길이 들어서고, 이곳에도 높은 아파트가 생겼다. 화분 가득한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높은 아파트, 오래 자란 가로수와 감도 높은 레스토랑이 자연스레 뒤섞인 공간이 이질적이지 않다. 이곳에서는 오래된 동네의 결 위에 새로운 공간들이 입혀졌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경의선 숲길로 모인다. 좋아하는 음악과 책, 하루의 끝을 기록할 자리가 골목 어귀에 놓여 있다. 환대가 일상이 되는 곳, 대흥동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 본다.
환대커피워크
대흥역에서 멀지 않은 곳, 장미가 핀 조용한 주택가를 따라 걷다 보면 오픈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가게 ‘환대커피워크’가 나온다. 벽돌 건물의 1층, 유리문을 활짝 연 가게는 주인 부부의 친근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곳을 단순히 카페라고 부르기에는 아쉽다. 문화 교류 ‘살롱’에 가깝다. 커피도 커피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대화를 향유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부분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트북 사용자를 볼 수 없다. 혼자 온 손님에게 주인 부부가 가서 말을 걸고, 함께 온 손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오픈 시간에 갔음에도 가게는 분주했다. 동네 사람들부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까지. 가게 손님들과의 짧은 대화를 틱톡과 릴스로 올리며 널리 알려진 까닭이다.
‘환대, 커피, 워크(walk)’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 커피와 산책까지. 좋아하는 단어 세 가지를 합쳐 가게 이름을 지었다. 산책하고 커피 마시기 좋은 대흥동과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곳에서만큼은 실컷 웃고 가라는 사장님의 말처럼 손님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다. 어릴 적 할머니가 타주던 믹스커피를 본뜬 ‘환대 커피’와 ‘사랑’ 혹은 ‘행복’ 같은 달콤한 말이 적힌 치즈케이크의 조합도 일품이다. 시그니처인 두 메뉴에는 달콤함과 함께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가게 한 편에 재미난 제목의 책이 놓여있다. ‘기분 좋아지는 방법’. 이곳의 주인 부부가 직접 제작한 책이다. 그들만의 행복 비법이 여러 가지 적혀있다. 견디기 힘든 순간마다 숨어있는 엄지발가락을 들어보라니! 이 얼마나 재미난 발상인가. 테이블 아래로 몰래 엄지발가락을 들어본다. 활자로 적힌 농담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주인 부부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새로 산 신발이나 요즘의 연애 근황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들. 타인의 일상을 기억하기 쉽지 않은 도시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가게를 나서는 길, 다음에 또 오라며 나를 꼭 끌어안는다. 기분 좋은 환대 덕에 대흥동에서의 시작이 즐겁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인근의 직장인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왔다. 산책을 위해서다.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가로수 그늘이 경의선 숲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와 강아지와 함께 걷는 노부부까지, 높은 아파트와 정겨운 가게가 조화를 이루는 이 길에서는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가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다. 숲길을 따라 늘어선 카페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곳곳의 오래된 가게와 벤치에는 어르신들이 모여있다.
아이오밀
경의선 숲길을 따라 들어선 가게들 사이로 유난히 세련된 건물이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문을 열기 전인데도 이미 손님들이 입구에서 대기 중이다. 경의선 숲길이 한 눈에 보이는 ‘아이오밀’에서 식사하기 위해서다. 제철 재료를 사용해 원플레이트 일본 가정식을 제공하는 이곳은 근처 직장인에게도, 여행자에게도 인기다. 창밖 풍경만이 인기의 이유는 아니다.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덕에 단골손님이 늘었다. 낫토동이나 구운 야채 카레도 인기가 많은 메뉴지만 사장님이 추천하는 시그니처 메뉴 두 가지를 주문했다. 가다랑어와 다시마로 직접 우린 육수에 톳밥과 구운 고등어를 곁들이는 ‘고등어 오차즈케’, 감자전분만 사용해 쫀득하게 구워낸 ‘모찌 두부아게’는 사장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감칠맛이 일품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 위해, 7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2년 동안 요리에 매진한 젊은 사장님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따끈하고 녹진한 오차즈케 국물을 한 모금 넘기니, 하루가 든든해진다.
서울 마포구 백범로16안길 15-1
평일·토요일 11:00–21:00 (브레이크 타임 15:00–17:30) | 매주 일요일 정기 휴무
웨이팅이 있을 수 있으니 오픈 시간을 노릴 것
대흥역 3번 출구에서 도보 4분
녹기전에
밥을 든든히 먹었으니 디저트를 챙길 차례다. 골목 안쪽, 간판 대신 커다란 아날로그 시계가 걸려 있는 가게가 있다. ‘녹기전에’. 가게 이름에는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오셨어요?" 카운터 너머에서 다정한 인사가 건너온다. 단골의 이름과 지난번에 어떤 맛을 골랐는지까지 기억하는 그의 접객은 책으로도 묶였다. 매달 손님들과 함께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으러 가고, SNS로 동네의 하루를 공유하기도 한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매개로 모인 이들이 어느새 작은 공동체가 된다.
오늘의 메뉴는 파파야와 커스터드. 한 입 떠 넣으니 햇볕만큼 익은 단맛이 돈다. ‘녹기전에’라는 이름은 그 약속을 지킨다. 자리에 앉아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비우니, 초여름의 열기가 훌쩍 달아난다.
서강대학교 캠퍼스
경의선 숲길과 이어지는 서강대 정문은 학생이 아니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본관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길, 그 사이의 벚나무와 은행나무 길은 봄과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의 산책길이 된다.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학생들을 바라보니 청춘의 한복판에 들어온 기분이다. 가장 일상적인 곳을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맛이 아닐까. 도심 한가운데에 이 정도의 산책 거리를 가진 동네는 흔치 않다. 잠깐의 산책만으로도 충분한 쉼이 된다.
수록곡 기록실
하루의 마무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건 어떨까. 올봄 문을 연 따끈따끈한 공간 ‘수록곡 기록실’에서는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하루의 끝을 정돈할 수 있다. 한국 가요를 애정하는 이곳 사장님은 가게에 좋아하는 것들을 빼곡히 모아 두었다. 한국 가요와 밴드 음악, 소설과 에세이, 하이볼과 설탕 토마토까지. 음악과 독서, 기록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꿈꾸다가 결국 직접 만들었다.
음악만 있어 아쉬움이 남던 LP바의 단점을 보완한 셈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읽는 것도 좋아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사장님의 지론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도 이곳의 정체를 몰라 이용 방법이 적힌 입간판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용 방법은 단순하다. 이용권을 결제한 뒤 좋아하는 음악 CD와 그에 어울리는 책을 고른다. 다과와 차가 함께 제공된다. 개별로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책을 바꿀 때마다 음악을 갈아 끼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즐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만화책도 마련되어 있다. 하루를 점쳐볼 수 있는 ‘오늘의 가사’ 뽑기는 무료다. 내가 뽑은 쪽지에는 유재하의 가사가 쓰여 있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을 생각해 내곤……’
자신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가사를, 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사장님의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곳의 모든 좌석은 마주 볼 일이 없도록 한 방향을 향한다. 둘이 와도 나란히 앉아 즐길 수 있는 구조다. 좌석 사이 간격도 넉넉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편안히 기록할 수 있다는 사장님의 배려다. 좋아하는 음악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에서, 대흥동의 하루를 기록해 본다. 오는 이들에게 온 마음으로 맞이하는 대흥동이야말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동네가 아닐까 싶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38길 5 1층
기록실 CT석 12,900원 (CD 개별 청음 + 음료 1잔 + 다과 + 책 열람)
이용 시간 평일 2시간 30분 / 주말 2시간 / 동시 12석 이용 가능 (노키즈존)
대흥동은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개성 있는 로컬 카페가 많은 지역입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즐긴 후 골목을 산책하며 작은 편집숍이나 서점을 함께 둘러보는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번화한 성수동이나 연남동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네, 대흥동은 홍대, 연남동, 망원동과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연남동, 홍대 등 핫플레이스를 방문 후 조금 더 조용하고 여유로운 서울의 모습을 경험하고 싶을 때 추천하는 코스입니다.
네, 서강대학교 캠퍼스는 누구나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단, 교내 안전과 보안을 위해 모든 교내 건물 및 강의실 내부는 단독 출입이 통제되며, 교내 구성원(학생, 교직원)의 동행 및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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