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걷는 서울의 섬, 선유도공원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며 주민처럼 살아보는 여행이 인기다. ‘서울에서 주민처럼 살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한강 피크닉. 양화대교 남단의 선유도공원은 물과 정원, 전시와 휴식이 어우러진 한강공원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물길이 만든 섬이자 물을 정화하던 정수장이었고 물이 풍부한 정원으로 재탄생한 선유도공원은 고요하게 계절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산책하며 사색을 즐기거나 섬이 들려주는 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나무 그늘에 앉아 온전한 계절을 받아들인다. 한낮에도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 주고, 비가 내리면 그대로 운치 있어 한여름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지지만, 선유도는 원래 봉우리 섬이었다. 이는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 속 ‘선유봉도’에 묘사돼 있으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도 그림으로 남겼을 만큼 경치가 빼어났다 전해진다. 1925년 커다란 홍수가 일어나자 선유봉에서 암석을 채취해 한강 제방을 쌓았고, 1930년대 김포공항을 건설하면서 암벽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1965년 양화대교가 놓이고, 1978년 선유정수장이 자리잡으면서 선유도는 옛 모습을 잃었다. 이후 정수장이 강북 정수사업소로 기능이 통합, 이전되면서 2002년 선유도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선유도가 공원으로 바뀌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정수장 구조물과 건물을 재활용했고, 그 결과 휴식과 자연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환경교육 장으로 재탄생했다. 선유도의 과거는 ‘이야기관’의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야기관’을 둘러보면 선유도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보다 잘 들릴 것이다.
약품 침전지였던 곳은 물을 정화하는 수생식물의 생장과 정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수질정화 정원’과 다양한 주제로 꾸민 ‘시간의 정원’으로 바뀌었고, 여과지였던 곳은 다양한 수생식물의 생장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수생식물 정원’으로 변신했다.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을 공급하던 송수펌프실을 개조한 ‘이야기관’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이며,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 남겨둔 곳에는 기둥을 타고 담쟁이 넝쿨이 자라 ‘녹색기둥의 정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정수장 농축조로 사용되던 ‘네 개의 원형공간’은 놀이마당, 환경교실, 원형극장, 화장실로 사용 중이다.
새롭게 추가된 공간도 있다. 옛 선유정을 복원해 선인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도록 지은 정자 ‘선유정’은 한강 너머의 인왕산과 남산, 북한산, 도봉산까지 보인다. 선유도공원과 선유교가 만나는 지점은 전망대가 있어 휴식을 하면서 공원 전체를 조망하기 좋다.
지금 선유도공원 곳곳에서는 서울시 공공미술 수변 갤러리 프로젝트 ‘선유담담’이 진행 중이다. ‘선유담담’이란 ‘선유도공원을 향유하며 떠오르는 이야기’란 뜻으로, 공원을 배경으로 작가와 시민이 함께 만든 이야기를 다채로운 미술작품으로 선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생식물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그림자 아카이브’. 햇빛과 그림자가 약품과 물을 거치며 풍경을 기록하는 시아노타입 프린트와 그림자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으로 수생식물 정원을 바라보는 긴 정자이자 선유도의 순간을 기록하는 장치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왜 이곳에 ‘신선이 노는 섬’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지하철 2/9호선 당산역에서 도보 15분, 9호선 선유도역에서 도보 10분
06:00~24:00
선유도 공원을 산책하다 여름철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갑자기 비가 내리면 실내 전시를 감상하며 선유도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2025 선유도 전시 프로젝트 <선유도: 조용한 공존>
도심 속 생태 안식처로 탈바꿈한 선유도공원에는 다양한 귀화식물이 자생한다. 귀화식물이란 외래 식물이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해 자생한 존재로, 서울의 생태와 풍경 속에 조용히 흔적을 남겨온 생명을 말한다. 귀화식물의 이주와 정착, 경계와 정체성 같은 삶의 이야기에 주목한 나현 작가는 식물과 교감하고 변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전시 <선유도: 조용한 공존>를 선보인다. 관람객은 전시장 동선이 아닌 식물의 자생 경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작품과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도시 공간 속 생명과 공존의 감각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냥집사들 모여라! 고양이잡화점 선유도고양이
선유도공원에서 나와 선유도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귀여운 고양이 판넬을 만나게 된다. 전세계 고양이의 이야기를 수집한 공간, 선유도고양이다. 주인장 백병근 씨는 15년 전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다 가족이 됐고, 3년 후 한 마리를 더 입양하면서 집사의 길을 걷게 됐다. 자연스럽게 고양이 소품에도 관심이 생겼고, 국내외 소품 숍에서 마음에 드는 소품을 수집했다. 우연히 일본 고양이잡화점을 방문했고, 다양한 소품을 보면서 한국에 이런 공간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직접 고양이잡화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보다 고양이처럼 조용한 지역에 터를 잡고 싶었다. 기왕이면 고양이 관련된 전설을 간직한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선유도를 알게 됐다. 과거 선유도에는 선유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었고, 그 모양이 고양이를 닮아 ‘괭이산’이라 불렸던 것. 이를 알고 선유도 근처에 자리잡았다.
2018년 4월 1호점을 오픈한 선유도고양이는 이듬해 2호점을 확장했다. 1호점은 사입한 소품을 판매하는 공간, 2호점은 국내외 작가 작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운영했다. 그러다 2022년 5월 1호점과 2호점을 통합해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선유도고양이에서는 전세계에서 들여온 고양이 관련 소품과 센스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는 없지만, 나도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 자석과 휴대폰 장식을 구매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로22라길 1 104동 104호
화~금요일 12:00~19:00, 토~일요일 13:00~18:00
전화 0507-1327-4606
홈페이지 seonyudocat.com
맛있는 휴식이 있는 한옥 카페, 피크니크 선유도한옥점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 속에 달콤한 디저트를 음미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한옥 카페. 아담한 안뜰을 품고 있는 한옥 카페 피크니크는 피크닉(picnic)과 유니크(unique)의 합성어로,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순간이 특별한 피크닉처럼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로고에는 푸른 잔디와 피크닉을 상징하는 파랑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카페 시그니처 메뉴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수플레 팬케이크. 퐁신퐁신한 시트 위에 제철 과일을 올린 피크니크 수플레, 초코 러버를 위한 초코 티라미수 수플레, 고소한 맛이 일품인 계란 버터 수플레 외에도 작은 사이즈의 오렌지 수플레, 바나나 그레놀라 수플레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이 외에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에그타르트와 진한 버터향이 고소함을 더하는 스콘, 상큼한 레몬향이 살아 있는 마들렌, 고소하고 담백한 쿠키 등을 판매한다. 계절 메뉴로 선보이는 피크니크 컵빙수는 망고코넛 빙수와 인절미 밭빙수 두 가지 맛이 있다. 2018년 선유도의 작은 한옥에서 출발한 피크니크는 경의선숲길과 판교 파이어스몰을 비롯해 시흥, 신도림 등에 지점을 두고 있다.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 선유도 공원이나 양화한강공원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한강을 바라보며 느긋한 티타임, 카페진정성
김포 한강신도시의 작은 카페로 출발해 김포를 넘어 인천, 광주, 제주로 진출한 카페 진정성이 2024년 10월 양화대교 위에 들어섰다. ‘진정성’이라는 이름에 맞게 유기농 제품을 사용하며, 건강한 음료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대표 메뉴인 밀크티는 콜드 브루 방식으로 찻잎을 우리고 신선한 우유와 블렌딩한다. 탈지분유를 사용하는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의 밀크티와 차별화된 맛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양화대교 남단에 들어선 카페 진정성은 동편의 티하우스와 서편의 커피하우스로 나뉜다. 티하우스는 다양한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쉬어갈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우리나라 전통 우전 녹차와 매장에서 직접 갈아낸 말차 등을 바리스타가 직접 블렌딩해준다. 커피하우스는 카페 진정성의 시그니처 메뉴인 밀크티와 함께 커피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양화 한강공원과 성산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커피하우스 창가 자리는 인기가 많은데, 해질 무렵 방문한다면 선유도와 한강을 배경으로 서울의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커피와 함께 곁들이기 좋은 사브레 쿠키와 비스코티, 바게트 등을 판매하며 밀크티는 포장 고객도 많다.
자연과 예술, 역사와 쉼이 어우러진 이곳 선유도의 하루는 서울이 품은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물길 따라, 바람 따라, 천천히 걸으며 나만의 선유도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