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곳이 인사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비단 한국의 전통 기념품 가게가 즐비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선 한국 본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현재의 시간 속에서 이질감 없이 흐르고 있다. 오죽하면 스타벅스의 간판마저 한글로 바꿔버렸을까. 인사동은 예로부터 예술가와 문인들이 사랑한 동네였다. 그들이 모여 상권을 이뤘고 현재 전통문화의 공간이라 자부하는 인사동을 만든 것이다. 문화 예술에 가장 조예가 깊은 동네, 인사동으로 떠나보자.
명신당필방 은 서예에 필요한 문방사우를 파는 곳이다. 그래서 입구엔 가게를 상징하는 큰 붓이 매달려 있다. 1932년에 충남 보령의 벼루 공장으로 문을 열었고, 1987년부터는 서예가들이 즐겨 찾던 인사동을 죽 지키고 있다. 스페인 국왕 부부, 네덜란드 황태자, 코스타리카 대통령 등의 국빈들이 명신당필방을 찾았다. 명신달핑방에서는 전각 체험과 캘리그라피 교육이 진행된다. 뒤늦게 글씨나 전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시간이 만들어 가는 것에 집중하라고 당부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문방사우 가게에서 문자예술의 진가를 전하는 가게의 역할도 하고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온종일 공간을 뒤지고 헤매기 딱 좋다. 온갖 고전에 족보, 학술서까지…, 앞으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고서적들은 마치 호위무사와 같은 기세를 가졌다.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 『독립신문』, 『황성신보』 등 우리 귀에 익은 문화재들이 통문관 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지금도 이곳 어딘가에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책들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오래된 책들이 우아한 향기를 품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통문관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옛 책들에 관한 이야기 한 번 들으러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국미술 지킴이. 1924년에 개업해서 줄곧 우리 문화와 예술을 내•외국인들에게 알리고 보급하는 일을 해왔다. 그렇게 통인가게는 한국 최초의 공예화랑, 공예샵, 크래프트 공방을 운영하게 됐다. 통인은 ‘우리가 생각하고 실행하는 일들이 세상 아름다움의 근본이 되고 바른 문화의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는 통인 정신을 그런 식으로 실천해왔다. 이계선 대표가 옛 문화를 지켜오면서도 현대 공예미술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고미술과 현대미술이라는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두 개념이 통인가게 에서는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이런 공간은 인사동뿐 아니라 한국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놋그릇 중 최고로 치는 것이 방짜인데, 황금비율로 만들어지는 방짜 유기는 결속력이 매우 높아 잘 깨지지 않는다. 이런 방짜 기술을 가진 곳이 한국과 터키, 두 나라밖에 없다. 터키의 방짜 기술로 만들어 내는 게 그 유명한 ‘질디언Zildjian’사의 드럼 심벌인데, 질디언 사의 회장은 납청놋전을 찾아와 우리의 전통 방짜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색이 변했을 때는 마른 수세미로 문질러 주면 다시 원래 빛깔이 살아난다. 납청놋전 의 내부는 온통 은은한 빛을 내뿜는 유기들로 가득하다.
인사동 탈방 의 탈들은 선이 무척 굵다. 그 굵은 선들이 모여 헤벌쭉 웃고 있는 한국인들의 얼굴을 그려냈다. 35년째 탈만 만들고 있는 탈방의 주인은 밥 먹고 탈만 깎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칼에 들어간 마음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선과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망가져 버린다.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담아낸 탈문화가 또 있을까? 웃고 울고 화내는 그 모습에 우리네 표정들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탈 중에서도 소중한 탈은 역시 하회탈이다. 800년 전의 원형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하회탈을 보고 있자니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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