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離宮)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이곳은 궁말, 궁뜰, 대궐재와 왕실 최초의 뽕밭을 일궈 서잠실, 장희빈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이궁은 정종 3년(1400), 정종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 (1425) 8월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에 궁실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 곳에 우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샘이 바로 "장희빈 우물"이다.
그 후 숙종(1674-1720)때 폐비된 인현왕후를 뒤 이은 희빈장씨(1659=1701)가 폐서인의 몸으로 이 곳 사가에 잠시 머물 때 마셨던 우물로 전해지고 있으나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연희동에서 오래 전부터 구전(口傳)으로 "이 우물은 장희빈이 마신 물" 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어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