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한없이 깊어지는 계절에 만난
서울의 네 가지 정경.
올림픽공원이 생긴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1986년과 1988년, 아시아게임과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면서 생긴 푸르른 공원은 오늘날에도 서울 시민의 활기찬 쉼터가 되고 있다. 올림픽공원을 천천히 걷다 보면 다채로운 풍경이 스친다. 140만㎡의 드넓은 부지에는 어느 한 곳도 똑같은 풍경이 낄 틈이 없다. 그러니 산책이 더욱 즐거워진다. 올림픽공원에는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5개의 산책길과 조깅 코스가 마련돼 있다. 고대 백제 유적을 따라 난 길은 호젓함 그 자체다. 총 2.3km 길이의 산책로는 올림픽공원의 9경(景)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경관이 아름답다.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배경으로 유명한 ‘나홀로나무’도 근처에 있다. 널찍한 들판에 우뚝 솟은 측백나무는 공원을 조성하면서 몽촌토성 내 민가를 철거하던 와중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오직 홀로 서 있기에 멋진 수형이 더욱 돋보인다.
과거 상인들의 교통로이자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철길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초록빛 옷을 입고, 걷기 좋은 숲길로 탈바꿈한 것이다. 용산에서 가좌역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총길이가 6.3km에 이르는데, 2012년 대흥동 구간을 시작으로 작년 5월 마지막 구간까지 완전히 개방됐다. 그중 연남동 구간은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빗대 ‘연트럴 파크’라는 별칭까지 생기며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앞으로는 복합 문화 공간인 경의선 책거리도 생겼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부스에서 책을 판매하고, 거리 곳곳에선 책 관련 행사도 펼쳐진다. 마음의 양식을 쌓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사실 경의선 숲길은 어느 구간을 걸어도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옛 철길의 흔적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숲길 옆 동네는 오늘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낙산, 남산, 인왕산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성곽은 오래도록 도읍지 한양의 경계가 되었고, 그 안의 하천과 산맥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며 도시가 자랐다. 한양이 서울이 되는 과정에서 본래 모습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세월이 흔적이 묻어 있는 성곽은 여전히 서울 도심을 에두르는 커다란 틀이다. 전체 길이 약 18.6km 중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낙산 구간이 2.1km를 차지한다. 낙산은 모양이 낙타를 닮은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야트막해 오르기 수월한 편이다. 성곽길이 관통하는 낙산공원은 잠시 쉬어 가기 딱 좋은 곳이다. 성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풍경이 사뭇 생소하다. 해 질 녘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물들던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어두워지면 한순간 주변의 조명이 일제히 켜진다. 고요함 속에 은은한 불빛이 일렁이는 서울 야경이 마음을 홀린다.
대한문에서 시작해 정동으로 이어지는 덕수궁 돌담길은 여러 노래 가사와 문학 작품에도 등장할 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서울의 대표 산책로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고궁 옆 돌담길의 고즈넉함은 배가된다. 특히 올가을엔 덕수궁 돌담길이 길어졌다. 지난 8월 영국대사관에 막혀 있던 길 중 일부가 58년 만에 새로 개방된 것이다. 영국대사관 후문부터 직원 숙소 앞까지 100m 구간의 길이 담장과 함께 재정비되고, 덕수궁과 이어지는 후문이 추가됐다. 같은 돌담길이지만 대한문부터 정동교회 앞 분수까지의 돌담길과는 다르다. 다른 구간에 비해 담장이 훨씬 낮으며, 무엇보다 이국적인 영국식 적조 담장과 마주하고 있어 분위기가 묘하다. 과거 고종과 순종이 제례 의식을 위해 드나들던 길을 지나며 서울의 오랜 역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석 달 전 재개관한 근처의 중명전에서는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을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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