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욕부터 문화생활까지
서울의 중심에서 풍류를 즐기다.
글. 양슬아 사진. 임학현
하늘 높이 솟아 시선을 끄는 타워는 대도시라면 하나쯤은 반드시 존재하는 랜드마크다. 얼마 전 롯데월드타워에 국내 ‘최고’의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남산서울타워 는 그 존재감이 여전한 서울의 클리셰 중 하나다. 매일같이 서울을 오가는 사람에게도 남다른 감흥을 일으키는 건 오랜 역사 때문일까.
남산서울타워가 남산 꼭대기, 서울 정중앙에 세워진 건 1969년의 일이다. 수도권 전역에 TV와 라디오 방송을 효율적으로 송출하면서 관광 전망 시설을 갖춘 종합 전파탑으로 건설했다. 1980년에 대중에게 개방한 이후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더니 연간 방문객이 1200만 명에 이르렀다. 남산서울타워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의 서울타워플라자와 지상 5층부터 전망대까지의 N서울타워로 나뉜다. 2015년에 문을 연 서울타워플라자는 남산서울타워가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한복문화체험관, 게임플라자, 카페, 레스토랑 등 각종 시설은 물론 세계 최초의 대규모 첨단 미디어 아트 조형물 등으로 타워가 한층 더 풍성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역시 타워 안팎의 전경이다.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에 올라서부터 해발 479m의 전망대에 도착하기까지 매 순간 남산과 저 멀리 서울 너머까지 찬란한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info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월-목 10:30~22:30, 금-일 10:00~23:00
02-3455-9277
@namsanseoultower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과거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남산 북동쪽 필동에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 을 찾는 것이다. 충무로역 3·4번 출구에서 나와 걸으면 채 5분도 안 돼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그리고 가뿐히 대문을 넘어서면 복잡한 도심과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세계가 열린다.
필동은 조선 시대만 해도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으며 삼청동, 인왕동 등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서울시는 1988년 이곳에 서울 곳곳의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 및 복원해 한옥마을을 조성했다. 현재는 전통 정원을 포함한 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을 합쳐 ‘남산골한옥마을’이라 부른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전통 정원은 훼손되었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해 전통 수종을 심고 연못과 계곡, 정자를 만들어 남산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도편수, 오위장, 해풍부원군 등 각기 다른 신분 및 성격의 사람들이 살던 한옥을 고스란히 재현해 선조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다만 이곳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여느 한옥마을과는 분명히 다르다.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는 오수 체험과 한옥만화방이 마련되는 남산골 바캉스, 전통 향과 천연 염색 등 전통 체험, 조선 말 개화기의 한양 저잣거리를 재현한 1890 남산골 야시장 등을 즐기다 보면 마치 조선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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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퇴계로34길 28
하절기(4~10월) 09:00~21:00, 동절기(11~3월) 09:00~20:00, 월요일 휴관
02-2261-0517
@namsangol_official
예부터 목멱산, 종남산, 마뫼 등으로 불리던 남산은 지리적 입지 덕분에 한양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울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남산봉수대지는 지금은 존재가 희미하지만, 조선 봉수제의 종점으로 전국 각지의 경보가 모여드는 가장 중요한 봉수소가 있던 자리다. 아울러 남산은 무엇보다 각종 수목이 이루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애국가 2절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소절이 있을 만큼 남산의 수목 중에서도 소나무는 높이 여겨졌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크게 훼손되었던 남산 소나무 군락지가 꾸준한 노력으로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 남산 소나무 힐링숲은 남산 소나무의 진면모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총면적 5만여 ㎡의 이 숲은 소나무 보전을 위해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총길이 620m의 숲길 등을 새로 조성하며 힐링숲으로 거듭났는데, 정해진 기간에 사전 예약한 인원만 입장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침엽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인체에도 이로운 피톤치드를 대량으로 내뿜어 숲속을 천천히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름 그대로 ‘힐링’이 된다. 아쉽게도 개방 시기를 놓쳤다면 남산 둘레길로 향하자. 남측 숲길에서는 전국 팔도의 소나무가 모인 팔도소나무단지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2018년 5월 말 문을 연 피크닉은 최근 남산 근처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주역이다. 2013년 아시아 최초이자 ECM 전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는 전시 기획사 글린트는 새 둥지로 남산을 선택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방치되었던 한 제약 회사의 사옥을 전시장, 카페 겸 바, 프렌치 레스토랑, 작은 상점이 알차게 들어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개관전은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음악 전시다.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데뷔 40주년을 맞이해 세계 최초로 그의 단독 전시를 개최했다. 앨범, 영상, 멀티미디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한 예술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에 이어 섬세한 프렌치 요리, 커피 또는 내추럴 와인과 쇼핑까지 즐기고 나면 한동안 무뎌졌던 온몸의 감각 세포가 생생히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