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도심 속 산책 공간
따스한 햇빛과 살랑이는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속에서 하염없이 거닐다 보면 근심 걱정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하다. 서울 도심에는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다. 이러한 공원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건축과 어우러져 있을 때 휴식 장소로서 의미를 갖는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더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될지, 어떻게 자연을 오롯이 담는 공간을 만들 것인지 등을 고민하는 것은 건축의 일이다. 오늘은 시민들의 힐링을 위한 건축적 고민이 담긴 산책 공간들을 함께 여행해보자.
시간이 멈춘 산책 공원
#선유도공원 #시간의정원
서울에는 폭이 1km가 넘는 한강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곳곳에 위치한 한강공원들은 서울의 다양한 공원들 중에서 특히 인기가 좋다. 커다란 수(水)공간으로서 특별한 힘을 갖기 때문이다. 한강에는 무려 27개의 대교들이 남북지역을 잇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양화대교의 긴 다리를 건너다보면 섬을 둘러 우거진 나무 숲에 가려진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난다. 양화대교 옆에 떨어져 나온 이 섬은 ‘선유도공원’으로 섬 하나가 통째로 공원을 이룬다.
‘선유도공원’은 2000년까지만 해도 서울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이용됐다. 지금은 친환경생태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공원에는 여전히 정수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물속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가라앉히던 침전지는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서식하는 식물원으로, 폐수가 담겨있던 큰 통은 놀이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역할을 다한 정수장을 없애지 않고 재활용한 ‘선유도공원’은 공원 자체가 정수장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진정한 자연 공원이다.
정수장의 흔적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시간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한때 침전지였던 이곳은 군데군데 패이고 깨져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인 듯 고요하다.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거친 표면의 다리와 울창하게 뻗은 넝쿨. 그 틈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고즈넉한 분위기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신비로운 기분 속에서 산책을 즐기게 한다.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운영시간 매일 06:00 ~ 24:00 (이야기관은 별도 확인 필요)
역사와 함께 걷는 산책길
#남산예장공원 #조선총독부유구터
‘남산예장공원’은 남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지리적으로는 열린 공간이지만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고립된 장소였다. 조선시대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는 통감부가 들어섰으며, 군사독재 시절에는 고문 수사를 행하던 중앙정보부가 있던 자리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지만 지난 날 쉽게 다가갈 수 없던 곳이, 이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품은 공원이 됐다.
‘남산예장공원’은 수목이 우거진 지상 공원과 그 아래 건축미를 뽐내는 지하 공간이 숨어 있다. 예장마당과 이회영 기념관 등이 위치한 지하 공간은 회색 콘크리트 벽에 둘러 쌓여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높은 층고와 넓게 트인 공간 덕분에 지하 공간이 주는 특유의 어둡고 답답함이 비교적 덜하다. 예장마당에서 이회영 기념관으로 길게 이어지는 통로는 천장이 뚫려 있어 오히려 개방감을 들기도 한다. 건물 틈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건물 외벽에 드리우는 나무 그림자가 빛과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산책의 묘미 중 하나다.
사방이 막힌 지하 공간과 달리 지상은 탁 트인 자연 공간이 매력적이다. 공원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남산을 배경으로 꼬불꼬불 이어진 오솔길은 여유롭게 거닐기 좋은 산책 코스이다. 공원 바로 옆에 큰 대로 위의 바삐 오가는 차들과 산책하는 시민들이 대비되어 한적함이 더욱 도드라진다. 공원 한 켠에 위치한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재현한 ‘기억6’과 조선총독부 관사 터를 그대로 보존한 ‘유구(遺構)*터’ 등 역사적 공간들은 공원이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 유구(遺構) :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흔적.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5-22
운영시간 상시 개방 (이회영 기념관은 별도 확인 필요)
스포츠와 문화, 예술을 모두 품은 공원
#올림픽공원 #조각공원 #미술관&박물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올림픽공원’은 경기장과 더불어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육 공간이 갖춰져 있다. ‘올림픽공원’은 세계를 화합하는 올림픽 정신을 계승해 스포츠뿐만 아니라 공연 미술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를 한 공간에 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올림픽공원’은 드넓은 자연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산책 공간이 되었다.
‘올림픽공원’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있는 예술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변 건물 크기와 엇비슷한 대형 조형물부터 사람 키보다 작은 작품까지. 세계 110개국의 국내외 작가들이 만든 다채로운 작품들은 공원의 조경과 어우러져 보는 즐거움이 있는 산책을 선사한다. 잔디밭의 조각 작품들 옆에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예술을 품은 공원에서 다채로운 볼거리와 함께 휴식을 즐기게 된다.
‘올림픽공원’에는 야외에 조각 작품이 놓인 조각공원 외에도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소마미술관과 한성백제박물관이 있다. 소마미술관은 미술관 곳곳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공원의 자연과 야외 조각 작품을 내부 공간으로 들여왔다. 백제시대 토성을 형상화해 전망대이자 산책로의 역할을 하는 한성백제박물관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관부터 건축미가 돋보이는 예술 공간과 함께하는 ‘올림픽공원’의 산책은 문화와 예술의 정취를 듬뿍 느끼게 된다.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운영시간 매일 05:00 ~ 22:00 (차량은 매일 06:00 ~ 22:00 출입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