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산이 많다고 한다. 어디 한번 세어본다. 북한산 (837m) , 도봉산(725m) , 수락산(640m) , 관악산(629m) , 청계산(609m) , 불암산(510m) , 삼성산(481m) , 호암산 (412m) , 용마산(348m) , 백악산(342m) , 인왕산(338m) , 인능산(327m) , 구룡산(306m) , 목동산(300m) …. 가장 높은 봉우리가 300m 이상인 산만 해도 14개, 그 아래 낮은 봉우리들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아도 산들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는 콘크리트 빌딩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을 뿐, 애써 등산을 위해 길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산이 감췄던 제 모습을 드러낸다. 숨바꼭질하듯 도시에 가려진 서울의 산. 그들은 우리에게 도로를 내주고 집을 내주고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를 내주었다. 아직 햇볕이 너무 따갑지 않은 초여름, 서울의 옛 주인들을 찾으러 떠나보자.
에디터 이희조(Lee Heejo)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서울에 산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울(당시 한양)은 애초에 산세에 의해 도읍으로 정해졌다. 조선 개국 초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지를 어디로 할지 알아보라는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고 한반도를 탐사한다. 한 봉우리에 오르니 그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도읍지로 삼을 것을 태조에게 아뢴다. 이곳이 바로 현재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 중 하나로 꼽히는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그가 품은 정기만큼 민족의 수난도 같이 겪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북한산의 정기를 끊어 놓으려는 목적으로 노적봉, 백운봉, 만경봉 등의 정수리에 놋쇠로 만든 말뚝을 박았다. 정치 심리전의 발상이었던 이 말뚝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몇몇 의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뽑혔다. 1968년에는 북한의 무장 공비 김신조 일행이 눈 덮인 북한산 기슭을 따라 청와대까지 침투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깊고 험한 산세의 은밀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북한산의 정기를 느끼려면 실제로 올라보는 수밖에 없다. 북한산은 그 넓이만큼 코스가 워낙 다양해서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다. 들머리도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등 사방에서 오를 수 있어 혼란스럽다. 하지만 일단 한번 들머리(예를 들어 도선사 입구)를 잡고 오르기 시작하면 체력에 맞게 코스를 자유자재로 줄였다가 늘릴 수 있어, 되려 고마운 생각이 든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에 올라 그곳에 사는 들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어도 좋고 북한산성 길을 따라 가지각색의 성문을 둘러봐도 좋다. 암벽 등반이 취미라면 인수봉, 노적봉 등의 봉우리를 하나하나 타보는 것도 물론 좋다. 정상을 오르는 것이 산을 즐기는 방법의 전부는 분명 아니니까.
북한산과 함께 서울의 북쪽 경계를 지키고 있는 산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수락산이다. 웬일인지 수락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모두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는 이 산을 서울의 수호산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선비가 이곳에 은둔하고 풍류를 즐기려 찾아들었다. 수락산은 북한산에 비교해 높은 산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악(岳)’자가 들어간 산은 험하다는 걸 기억하라.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구성된 수락산은 중간 기점인 도솔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 큰 바위들을 여럿 지나야 한다. 조금 어려운 길이지만 탱크바위, 코끼리바위, 철모바위 등 이름만 들어도 재밌는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묘미라면 묘미다. 또한 숨이 헐떡여질 때쯤 세상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 이 불어와 당신을 안아주니 기분 좋게 걸을 만하다. ‘물이 항상 떨어진다’는 뜻의 수락(水落)이라는 이름처럼 산 곳곳에 자리한 폭포와 계곡은 덤.
이번에는 한강 아래로 내려와 보자. 관악산이 서울의 남쪽 경계를 받치고 있다. 관악산은 끝 봉우리가 불꽃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어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다. 이 불의 기운 때문에 궁궐에 불이 날 것을 예방하기 위해 광화문 양쪽에 해태를 세웠다. 해태는 불을 막는다고 여겨지는 상상의 동물이다. 수락산과 마찬가지로 관‘악’산도 바위산이라 올라가는 폭이 다소 높다. 하지만 멀리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빨간 암자인 연주대가 보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취해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연주대는 태조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뒤 고려의 충신들이 이곳에서 멀리 옛날 고려 땅을 바라보며 망한 왕조를 연모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관악산을 오르는 모든 등산로가 이곳에서 집결하니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내려가도 좋고 암릉의 백미라 불리는 육봉 능선과 팔봉 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한국말에는 실수했을 때 쓰는 ‘아차’라는 말이 있다. 아차산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 명종 때, 사주 역학의 대가인 홍계관이 명종이 40세를 넘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명종이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쥐 한 마리를 상자에 넣고 몇 마리인지 물었는데, 홍계관이 다섯 마리라고 대답했다. 명종은 답이 틀렸다며 홍 계관을 참수형에 처했다. 하지만 쥐를 확인해 보니 뱃속에 새끼 네 마리를 품고 있었다. 명종은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라며 교지를 내려 그가 살던 산을 아차산이라 부르게 했다. 서울 동부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287m)은 유래도 재밌지만, 한강 바로 위에 있어 산길을 오르는 내내 한강 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특히 매력적이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지키기 위해 세웠다는 보루들을 따라 아름다운 곡선으로 굽이치고 있는 한강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마지막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고도 295m의 나지막한 뒷 산, 안산이다. 이 작은 산은 사실 서울의 주산이 될 뻔했다. 경기도 관찰사였던 하륜이 북한산에서 잘 보이는 이곳을 주산으로 정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경복궁과 청와대는 지금 신촌과 연세대학교 자리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이 좁다는 이유로 결국 서울의 주산은 백악산이 되었고 경복궁은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안산은 봉수대가 있는 정상까지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이곳에 서서 시내를 둘러보면 왼쪽으로 인왕산, 하늘이 맑은 날은 멀리 북한산까지도 보인다. 굳이 높은 산에 오르지 않고 이렇게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서울 말고 더 있을까?
북한산 (약 3시간 30분)
도선사 주차장 → 봉암문(위문) → 백운대 → 봉암문(위문) → 용암문 → 대동문 → 소귀천매표소
수락산 (약 4시간)
수락산역 → 도솔봉 → 코끼리바위 → 정상 → 금류폭포 → 사기막
관악산 (약 4시간)
서울대학교 공학관 → 제4야영장 → 연주대(정상) → 연주암 → 시흥향교(과천유원지)
아차산 (약 2시간 30분)
아차산역 → 청상병길 → 고구려정 → 제5보루 → 제4보루(정상) → 긴고랑길
안산 (약 1시간 30분)
서대문구청 → 봉수대(정상) → 서대문독립문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