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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막이 내린 후에도 여전히 세계적인 예술의 수도로 자리 잡는다. 굵직한 회고전과 특별전, 그리고 날카로운 그룹전이 서울 곳곳의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이어지며, 국제적 예술 열풍에 화답한다.
“갤러리와 미술관 수만 봐도 한국은 탄탄한 미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또한 9월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 중 하나라, 해외 관광객이나 컬렉터가 방문하기에 이상적인 시기이기도 하죠.” - 키아프 디렉터 Eunice Jung
이번 가이드는 서울의 세 개 주요 아트 지구-삼청동, 한남, 강남-을 중심으로, 에디터가 이번 달 가장 인상 깊게 본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 일정이 끝난 뒤에도 참고할 수 있는 정보로, 서울 예술 여행의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삼청동 (및 종로 일대)
개인적으로 이곳을 서울에서 가장 그림 같은 아트 거리라 꼽는다. 한옥 골목과 현대적인 유리 파사드가 어우러지고, 좁은 골목길 사이로 찻집, 카페, 공예 상점이 늘어서 있다. 걸어서 둘러보기 좋고, 전통의 숨결이 살아 있으며, 서울 대표 미술관과 오래된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국립현대미술관 : 《김창열》 (2025년 12월 21일까지 /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 소속)
갤러리 현대부터 학고재까지 갤러리들이 즐비한 삼청로의 중심 랜드마크인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국내 미술계 지형을 주도하는 기관이다. 약 2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개인 소장품 전시부터 2021년 타계 이후 처음으로 마련된 김창열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까지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벽에 적힌 다음의 문구로 시작된다.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동창생 120명 중 60명이 전사했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살에 난 총알 구멍으로 상상하며 물방울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상징적인 물방울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트라우마, 규율, 힘들게 얻은 평온이라는 개념적 깊이였다. 전쟁의 외침이 탱크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나 총알 구멍처럼 캔버스에 새겨진 것 같아서 전시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월,화, 목, 금, 일 10:00 - 18:00 /수& 토 10:00 - 21:00
* 특별야간전시 18:00 - 21:00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764m
국제갤러리 : 《루이스 부르주아 & 갈라 포라스 김》 (2025년 10월 26일까지)
프랑스-미국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Rocking to Infinity’는 삶을 지탱하는 시간, 애정, 관계의 결을 마지막 20년간의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붉고 분홍빛 드로잉들이 전시 공간을 감싸며 하나의 몰입형 환경을 만들고, 세 점의 주요 조각은 마치 기념비처럼 전시장에 서 있다.
국제갤러리의 또 다른 전시 공간에서는 예술가 갈라 포라스 킴(Gala Porras-Kim)이 기관이 사물을 분류하고 보존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그 과정 속에 숨겨진 의미 형성의 논리를 드러낸다. 전시장 앞쪽 방에는 흑연에 적신 천과 시간이 흐르며 습기를 방출하는 산업용 제습기를 활용한 드로잉이 설치되어 있다. 물방울은 바닥 패널 위에 유기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며, 기후와 계절, 그리고 관람객의 움직임까지 협력자가 되어 갤러리 자체에 흔적을 남긴다.
작품 앞에 서 있는 동안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개입을 체감하게 된다. 실제로 에디터 역시 30분 동안 넋을 잃고 작품 앞에 서 있었다. 전시장 안쪽에는 “균형 잡힌 돌”과 “동물 모양의 돌”에서 나아가 사변적 상상력을 더한 “외계인 돌”에 이르기까지, 수석(壽石)과 그 미학적 분류를 새롭게 해석한 6점의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전통적 분류 체계와 미학적 관습을 다시 질문하며,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안한다.
갤러리 조선 : 《민성홍, 잔해의 흐름》 (2025년 10월 26일까지)
1971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화랑으로 설립된 조선화랑의 전통을 계승한 갤러리 조선은 오랜 시간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여준수 COO는 “우리 프로그램은 항상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해외 관람객들이 이러한 맥락을 접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현대미술 인재를 지원하고자 하는 갤러리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소품으로 가득한 무대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받는다. 작가는 가구부터 오브제까지 버려진 사물을 수집해 조각내고 다시 한 땀 한 땀 이어 붙였다. ‘파편의 흐름’이라는 제목은 보이지 않는 힘과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반영하며, 움직이는 파편이라는 의미를 담아낸다.
일민미술관 : 《형상 회로》 (2025년 10월 26일까지 /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 소속)
박물관의 새로운 그룹전에서는 영구 소장품을 포함해 17명의 작가가 9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단색화 운동이 쇠퇴하던 1970년대의 작품으로 시작해, 활기찬 현대 풍경을 담은 2000년대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에디터가 특히 눈여겨본 작품은 박광수 화백의 그림이다. 선이 다층적인 윤곽과 질감, 구조를 만들어내며 생생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는 3개 층에 걸쳐 진행되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람하는 것이 좋다. 1층의 카페 ‘이마’에서는 신선한 토마토 주스부터 홈메이드 함박스테이크까지 훌륭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한다. 긴 갤러리 산책 전에 에너지를 보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남-이태원
한남 지역은 대사관, 플래그십 스토어, 엔터테인먼트사, 유리 외벽의 레지던스가 모여 있는 서울의 지구촌이다. 이곳에서도 예술은 거대한 건축적 제스처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리움미술관 : 《이불, 1998년 이후》 (2026년 1월 4일까지 /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 소속)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작가 이불은 오프닝 리셉션 현장에서도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시장 1층을 뒤틀리고 깨진 거울로 가득 채운 이불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몰입과 성찰의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지난 40년 동안 이불은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와 이를 형성하는 권력 메커니즘을 탐구해 왔다. 벨벳과 자개로 만든 콜라주부터 거울로 구성된 미로 설치까지, 이불의 작품 1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다.
페이스 갤러리 서울 : 《제임스 터렐, The Return》 (2025년 9월 27일까지)
터렐은 캘리포니아 빛과 공간 운동의 핵심 멤버로, 몽환적인 느낌의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페이스 창립 65주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 James Turrell/Pace Gallery. Photo byKyle Knodell
관람객 수를 제한해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만큼,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터렐의 새로운 장소 특정적 작업 ‘웨지워크’는 ‘터널 비전이 공간이 되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에디터에게는 마치 예배당에서 나오는 단어가 하나둘 빠져 이해하기 어려운 듯 느껴졌지만, 동시에 작품의 신비감을 더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마크 브래드포드 : Keep Walking》 (2026년 1월 25일까지)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품의 규모였다. 특히 600㎡에 달하는 바닥이 선명한 색상의 긴 천으로 덮여 있어, 마치 그림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종잇장부터 길거리 전단지까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작품은 소외된 공동체의 사회정치적 무게를 긴박하면서도 기념비적인 시각적 리듬으로 풀어낸다.
강남
한강 이남의 이곳은 메종, 아틀리에, 미러 파사드, 스포츠카 등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예술 공간의 규칙을 다시 쓰는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송은문화재단 : 《Panorama》 (2025년 10월 16일까지 / 서울예술관광얼라이언스(SATA) 소속)
송은문화재단은 중견 한국 예술가를 후원하고 야심 찬 건축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큐레이터 중심의 기업 재단으로 유명하다. 세계적 건축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설계한 건물 자체가 하나의 선언문처럼 다가온다. 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한 각 전시실은 각자의 주제와 아이디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선우 작가는 화석화된 로봇 청소기와 골동품 세탁기에서 자라나는 긴 머리카락, 치즈 강판의 대형 회화 등을 통해 아시아 문화에 뿌리 깊은 성별화된 가사 노동과 기술 발전을 탐구한다. 권병준 작가는 제주에서 수집한 소리를 바탕으로 한 사운드 작품을 선보인다. 예멘 난민들의 노래, 북한 인근 교동도의 소리 풍경, 다문화 가정의 자장가 등 25개의 오디오 작품은 지하 벙커 공간을 가득 채우며 관람객을 몰입시킨다. 에디터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장을 거닐고 있음을 발견했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 《언더 레이어 데뷔》 (2025년 11월 9일까지)
강남은 실험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비영리 아트센터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플랫폼엘은 2016년부터 이 틀을 깨고 있다. 태광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시와 공연, 사운드, 라이브 이벤트가 어우러진 서울의 다원예술 허브로 자리 잡았다. 대표 프로그램인 PLAP(플랫폼-엘 라이브 아트 프로그램)은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과정 기반 작업의 실험실 역할을 제공해왔다.
Source: Platform-L
올가을, 센터는 말 그대로 새로운 층을 추가한다. 1층 프로젝트 공간 ‘PS 언더 레이어’는 실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중견 작가를 지원하는 분명한 사명을 갖고 출범했다. “우리는 두세 달마다 바뀌며 예술가들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매출도 중요하지만, 유연성 또한 필수입니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아트센터가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접근성이 큰 장점입니다.” 김나리 관리 책임자의 설명이다.
첫 전시인 박경렬의 《Undefined Rhythm》(9월 3일~11월 9일)은 이 공간을 위한 선언문 같은 전시이다. 20점의 회화 작품이 불규칙한 케이던스로 숨을 쉬는 듯한 붓질로 정해진 템포에 저항하며 맥박을 친다. 두 개의 한정판 아트 스카프는 작품을 촉각적이고 착용 가능한 것으로 확장하여 플랫폼엘의 다학제적 DNA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9월은 서울의 예술계가 모방이 아닌 융합의 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옥이 늘어선 골목부터 강남의 건축적 외관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한국적인 것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아이디어, 뉴미디어, 하이브리드 형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플랫폼엘 이정민 대표는 “결국 한국인이 가장 잘하는 것은 한국적인 것을 보존하면서도 다른 분야를 끊임없이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서울의 예술은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며 그 파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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