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목욕탕은 주말을 대표하는 추억의 장소다. 트레이닝 복과 슬리퍼 등 편안한 차림으로 목욕탕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돈을 내고 수건 두 장과 열쇠를 받은 뒤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져 있는 탈의실로 들어간다. 그 안에 일렬로 서 있는 옷장 중 하나에 옷을 벗어 넣고 따뜻한 훈김이 피어오르는 탕으로 입장하면 된다.
일반적인 한국의 목욕탕은 온탕과 냉탕, 약재탕이나 허브탕 같은 이벤트탕, 습식·건식 사우나, 그리고 세신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동네 목욕탕은 대형 찜질방과 달리 단골손님들이 모여 정겹게 수다를 떠는 동네의 사교장소 같은 역할을 하였기에 이곳에 가면 한국인의 정과 문화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어느 동네나 한두 곳의 목욕탕이 있었지만 코로나의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점점 동네에서 사라지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따뜻한 정을 전하는 서울의 목욕탕을 만나보자.
명동과 동대문 사이에 있는 을지로는 인쇄, 가구, 금속 부품 등을 취급하는 상가와 공장들이 밀집해있다. 한때 서울의 상업과 공단의 중심이었던 이 지역은 도시 개발로 고층빌딩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영세한 상인과 작은 공장들이 떠난 자리에 저렴한 임대료와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을 찾아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레트로를 새롭게 해석한 뉴트로의 유행을 타고 을지로는 ‘힙지로’로 변신하며 서울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신구가 공존하며 많은 젊은이와 여행객들이 찾는 을지로에서도 목욕탕 문화를 즐길 수 있다.
1986년 문을 연 매일온천은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 급변하는 서울에서도 한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명소이다. 이곳의 귀여운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간판의 ‘온’이라는 글자 위에 붙어 있는 목욕탕 마크이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보이는 카운터에서 목욕비를 내고 지하로 들어가면 목욕탕 체험이 시작된다. 탈의실은 밝고 깔끔한 분위기다. 이곳의 온탕은 온천수는 아니지만 사장님의 ‘우리 목욕탕은 온탕이 좋다’는 자부심에 걸맞게 물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
매일온천 한방 사우나실은 쑥과 감초, 천궁 등을 합친 한약재가 내뿜는 한방의 향기와 증기로 가득하다. 한방 사우나실에서 땀을 쏙 빼고 맑고 깨끗한 온탕에 몸을 푹 담그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16길 5-10
○영업시간: 06:00~20:00 (토요일: 06:00~19:00) / 일요일, 공휴일 휴무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수산시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이 근처에 위치한 청수탕은 비록 현재는 여탕만 운영하고 있지만 인근 재개발 결정으로 주민들이 점점 떠나는 상황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노량진 주변에는 공무원 공부나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련 학원가가 밀집해 있어 일명 고시촌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예전에나 볼 수 있었던 ‘하숙집 있음’ 같은 전단지를 찾아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지역이다. 여전히 예전 감성을 가진 미용실이나 세탁소 같은 작은 가게들도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청수탕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탈의실이 나오는데 놓여 있는 냄비와 밥솥 같은 조리 도구들이 마치 어느 가정집 부엌에 들어온 듯한 정겨움을 준다.
또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안마시트나 바닥에 편하게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동네 할머니들의 모습 등 관광으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일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청수탕 중앙에는 메인 탕이 있다. 거울에 붙어 있는 옛날 화장품 광고와 색 바랜 플라스틱 의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감성을 선사한다. 이런 감성 덕분에 입소문이 퍼져 MZ세대들이나 유튜버들이 방문하기도 한다고. 청수탕 역시 일반적인 목욕탕과 마찬가지로 세신이 가능하다.
개업한 지 50년이 다 되어 가는 청수탕의 깨끗한 물에서 목욕을 하고 싶다면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로6길 53
○영업시간: 06:00~16:00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금융의 중심지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63빌딩이 위치해 있으며 여의도 한강공원, 더 현대를 비롯해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여의도에는 1971년 완공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지금은 대부분 재개발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라 곧 철거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부 단지에서는 최근 지어진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진 자연 친화적이면서 정겨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대부분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유명한 맛집이나 명소가 있는 오래된 상가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시범사우나도 그런 곳 중 한 곳이다.
1990년대 중반에 문을 연 시범사우나는 24시간 운영한다는 장점이 있다. 목욕탕과 함께 찜질방도 운영은 하지만 코로나 이후 이용자 수 감소와 난방비 증가 등으로 인해 현재는 휴게공간은 절전모드로 운영되고 있으며, 식당은 현재 아쉽게도 휴업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목욕을 한 뒤 조용히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세월의 변화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달라진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의도 아파트 주민들과 금융가 회사원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시범 사우나를 방문해 관광 후 지친 몸을 휴식해 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45 여의도시범아파트
○영업시간: 2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