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서울 속 외국’으로 이국적이고 힙한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이런 이태원에도 30년 이상 전통을 지킨 ‘오래가게’들이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과 장인정신을 그대로 지키며, 주한미군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단골층으로 사로잡았던 독특한 가게들이다. 색다른 이태원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보자. 전통적인 것이 가장 힙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의 문화, 이른바 ‘전통 힙’정신에 부합하는 이태원 오래가게를 소개한다.
Since 1973,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중고책 서점
이태원북스는 1973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5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국 중고책 전문 서점이다. 가게 출입구 차광막에 쓰인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모든 종류의 책을 사고, 팔고, 교환합니다.)’라는 말처럼 17평의 가게 안에 10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 창립자인 최기웅 대표가 미군 부대에서 버려둔 책과 잡지를 가져다가 팔기 시작한 것이 이태원북스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전국의 미군 부대를 다니며 수거한 책을 명동과 종로 등지에 직접 팔았고, 이후 1973년에 이태원에 본격적으로 헌책방을 열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조금씩 모양과 색이 다른 책장에 수많은 책이 줄지어 꽂혀 있다. 책의 크기에 짜 맞춘 것처럼 각기 다른 크기의 책장은 모두 이태원북스의 창립자 최기웅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사방 벽에 있는 책장은 물론이고, 슬라이딩 이중 책장까지 가게 주인의 손길을 거친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책을 찾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고,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책을 사기 위해 방문한다. 또 인테리어 용도로 빈티지 북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시간이 축적된 고유한 분위기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08 1층
○영업시간: 매일 11:00~19:30
○인스타그램: @itaewon_books
Since 1967, 반백 년 해방촌을 지킨 전통 옹기가게
한신옹기는 해방촌 입구 미군 부대 담벼락을 따라가면 나오는 빨간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가게 옆엔 큰 항아리들이 줄지어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올해 88세의 한신옹기 신연근 대표는 그저 물건을 잘 보이게 진열해 둔 것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에겐 감각적인 포토존으로 거듭났다.
항아리의 행렬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가게로 이어지는데, 신연근 대표는 젊은 시절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들을 상대로 짧은 영어를 하며 옹기와 항아리를 팔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만큼은 능숙하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코리아’ 것이라고 소개할 만큼 가게에서 판매하는 도자기는 경기도 이천 등에서 공수해 온 제품을 취급하며, 일부 옹기는 옹기 장인들에게서 받아온 제품들이다.
옛날 미군들이 짐을 채워 보낼 상자 따위가 부족했을 때 한신옹기에서 항아리를 사 물건을 담아가기도 했으며, 지금도 평택으로 옮긴 미군 부대 사람들이 찾아와 한신옹기의 항아리를 찾는다. 크고 작은 항아리뿐만 아니라 동전 몇 개가 들어갈 정도로 작은 옹기 소품, 고급 한식당에서 쓸만한 접시와 그릇 등도 즐비하다.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7
○영업시간: 매일 11:00~18:00
Since 1971, 작은 민화박물관 같은 이태원 대표 표구사
대성표구사
대성표구사는 이태원에서 2대에 걸쳐 60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온 오래가게다. 지금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아 아들 이상은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1980년도만 해도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설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한때 열 명 내외 직원, 70평 정도 규모의 공장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핵심 고객들은 주한미군과 대사관 사람들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미국에 작품을 수출해 달러를 벌 만큼 큰 호황을 누렸다.
지금은 가게의 규모가 줄었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오래전 대성표구사의 창립자인 이명운 전 대표가 모아둔 전통 그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게 곳곳엔 민화, 풍속도, 초상화 등과 쉽게 만나보기 힘든 족자들도 걸려있다. 더러 100년을 넘긴 작품들도 있는데, 이상은 대표의 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겨 팔지 않는 그림들도 있다.
국내 손님들은 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고, 외국인 손님들은 전통 그림 액자나 족자를 기념품으로 구매하기 위해 많이 찾는다. 대성표구사엔 꼭 비싼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00원 선부터 출발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작품들도 있으니 ‘전통 힙’ 정신이 담겨 있는 작품을 하나 소장하고 싶다면 대성표구사로 가보자.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16 1층
○영업시간: 10:00~18:00, 일요일 휴무
Since 1971, 이태원 골목길 정겨움이 가득한 슈퍼
합덕슈퍼
합덕슈퍼는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충청남도 합덕에서 이사와 문을 연 슈퍼라 하여 ‘합덕슈퍼’라고 이름 지었다. 김효태·장묘순 대표 부부가 50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매일같이 가게 문을 열고 있다.
두 사람이 한남동에 처음 왔을 땐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으며, 길도 제대로 닦여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동네가 어느새 다양한 문화의 중심지로 재탄생하여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는데, 김효태·장묘순 대표 부부는 이 모든 변화를 이곳 합덕슈퍼에서 지켜봤다.
슈퍼 안을 가득 채운 깔끔하고 가지런히 정리된 과자와 생필품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젊은 관광객들은 가게의 레트로한 풍경에 매료되어 가게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이태원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숨겨진 진정한 레트로 풍경을 만나고 싶을 때 합덕슈퍼로 가보자.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20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종로구 일대 마지막 오래가게 | 서울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서울 오래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