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일대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여행자도 많이 찾는다. 미술관과 갤러리 등의 문화 시설이 모여 있고, 서울 4대 궁궐과 가까우며, 오래된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동네로 불리기 때문이다. 삼청로와 청와대 사이에 자리잡은 팔판동은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이다.
팔판동이란 이름은 전현직 판서가 여덟 명이나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6조의 장인 판서는 정2품 공무원으로 지금으로 치면 장관급이다. 이 좁은 동네에서 고위직 공무원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광화문 앞이 6조 거리였으니 팔판동은 출퇴근 용이한 주택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팔판동 산책은 ‘진선북카페’에서 출발한다. 과거 진선출판사가 운영하던 북카페로, 지금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카페로 운영 중이다. 인파를 피해 삼청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고즈넉한 분위기 아래 세련된 소품숍과 오래된 기와집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줄지어 서있었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속이 꽉 찬 팔판김밥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 탄수화물이 골고루 든 김밥은 균형 잡힌 한끼 식사로 제격이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해 건강식을 선호하는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TV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개되기도 했던 ‘팔판김밥’은 줄 서서 먹는 맛집이다. 메뉴는 단출하다. 김밥과 토스트, 그리고 어묵이 전부다. 대표 메뉴인 팔판김밥은 밥 양이 적고 속이 푸짐해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볶은 어묵과 계란 지단, 당근, 단무지, 맛살, 햄, 깻잎 등이 들어가는데, 깻잎의 향긋함과 계란의 고소함이 도드라진다. 주문 즉시 김밥을 말아 재료의 신선함이 살아있고, 선호하지 않는 속재료를 뺄 수 있어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 김밥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근한 간편식인데, 최근 고급화 전략으로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팔판김밥은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며 질 좋은 김밥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팔판김밥 외에도 꼬마 김밥, 참치 김밥, 치즈 김밥, 김치 김밥, 김치참치 김밥을 판매한다. 좌석은 단 4개, 대부분 포장 손님이다. 토스트도 별미인데, 기본 토스트인 팔판 토스트는 각종 채소를 얇게 썰어 계란을 넣고 전처럼 부친 다음 구운 빵 사이에 올리고 설탕, 케첩,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 낸다. 추가하는 재료에 따라 햄 토스트, 치즈 토스트, 햄치즈 토스트가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쉰다.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36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서울의 무드가 담긴 향을 만날 수 있는 빌라 에르바티움
빌라 에르바티움은 한국 니치 향수 브랜드로,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감정을 피운다고 해서 ‘감정 향수’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어로 문화 공간을 의미하는 ‘빌라(Villa)’와 허브를 뜻하는 ‘에르바(Erva)’에 순 우리말 ‘싹 틔우다’의 명사형 ‘티움(Tium)’을 조합한 브랜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연에서 온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는 믿음으로 꽃과 식물 잎, 줄기, 뿌리 등에서 추출한 천연 향료를 사용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에서는 시향하면서 취향에 맞는 향을 찾아갈 수 있는데, 향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 음악, 이미지가 연출돼 후각적 즐거움이 시청각적인 즐거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빌라에르바티움의 컬렉션은 크게 브론즈, 느와, 캐주얼로 나뉜다. 각각 우아하고 클래식한 향,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향, 그리고 액티브한 감성을 담은 컬렉션이다. 첫 향부터 마지막 향까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향을 꼼꼼하게 계획해 조향한 향수로, 타 향수와 레이어링하지 않고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고.
추천 향수는 BTS RM이 구입해 유명해진 ‘모시글렌(Mossy Glen)’과 서울시와 협업한 ‘서울 향수(Scent of Seoul)’. 과일과 꽃 허브와 나무가 한데 어우러지는 모시글렌은 스코틀랜드 모시글렌 협곡을 그림 그리듯 표현한 것으로, 무화과 잎과 대나무, 월계수 잎으로 만들었다. ‘서울 향수’는 편백나무와 월계수 등을 조합해 완성했다. 시작은 비 온 뒤 서울의 새벽 내음을 연상시키고, 차츰 뱀부와 제라늄이 복잡하면서도 미니멀한 서울의 매력을 더하고, 마지막에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서울의 밤을 떠올리는 시더와 플로럴 우드 향이 풍긴다.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15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빈티지한 인테리어의 로스터리 카페 로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과 여정(이도현)이 처음 만난 장소가 바로 카페 로쏘다. 정성껏 가꾼 작은 정원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커피향을 따라 실내에 들어서면, 박공 지붕 아래 벽이나 기둥 없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바닥과 천장은 물론 테이블과 소품도 따뜻한 질감의 나무를 사용해 편안하면서도 다정한 분위기.
일주일에 3~4번 생두를 로스팅해 커피의 맛과 향이 가장 좋을 때 손님에게 내는 로스팅 카페로, ‘오늘의 커피’를 통해 매일 다른 원두를 선보인다. 섬세한 커피의 향과 맛을 즐기고 싶다면 드립 커피를 추천. 이외에도 다양한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와 차, 에이드 등을 판매한다. 디저트도 만족도가 높은데, 샌드위치와 크로플, 베이클, 토스트를 곁들이면 브런치로 즐기기 좋고, 크림 치즈 케이크를 제외한 모든 케이크 오렌지, 초코, 애플 시나몬, 마스카포네 티라미슈 등을 직접 만든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으로, 나무 인테리어와 클래식한 찻잔, 나무로 만든 조명과 귀여운 모빌 작품이 빈티지한 무드를 풍기는데, 모두 대표의 남편이 취미 삼아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로쏘(Rosso)는 이탈리아어로 빨간색을 의미한다. 원두와 드립백 커피를 판매해 집에서도 카페 로쏘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81-12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동시대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옥 갤러리 호호재
가구디자이너 겸 홍익대 미술대학 한정현 교수가 운영하는 한옥 갤러리.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선보인다. 1층에는 아늑한 마당과 작은 화단이 있고, 2층에는 창 커다란 창 너머로 팔판동의 한옥 지붕을 감상할 수 있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은 한옥의 현대적 변화를 추구해 온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가 설계했다. 한정현 작가의 어머니가 지내던 한옥을 새롭게 되살렸다고 한다. 나비 호(蝴)자를 쓰지만 ‘호호’ 웃음이 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호호재에서는 6월 17일까지 <느린 손의 반란_시간을 이긴 공예>전이 열린다. 장인의 숙련된 손길과 시간을 들인 본질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금속과 도자, 목공 옻칠, 유리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9인이 참여한다.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 과정과 도구, 미완성 작품까지 함께 선보여 공예가 지닌 시간성과 깊이를 입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현대사회에서 잊혀가는 기다림과 집중의 의미를 재발견하길 바란다. 전시는 별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화~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1-7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