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넓은 잔디광장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가로수 사이로 돌담이 길게 이어져 있다. 이 돌담을 따라 시선 끝에 덕수궁의 대문인 대한문이 보인다. 그리고 대한문 왼편 골목으로는 가을 단풍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덕수궁 돌담길로 알려진 이 길과 함께 이어지는 정동길은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산책길로 꼽힌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묘인 ‘정릉’의 이름을 따 ‘정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조선 말기 고종이 대한제국의 역사를 꿈꾼 곳이다. 서양의 영사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신식 문명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지역이기도 하다. 구한말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곳 정동은 서울의 근대사를 기록하고 있는 커다란 박물관이다.
낭만과 여유가 있는 산책길이며, 동시에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거리, 정동.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중심에서 100년 전 과거를 떠올리며 정동만의 가을 풍경을 느껴보자.
돌담이 만들어내는 아늑한 산책길
#덕수궁돌담길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끝까지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속설은 덕수궁 돌담길 왼편 지금의 서울시청 별관 자리에 있던 경성가정법원 때문에 이어져 내려왔다. 돌담길을 함께 걸어 가정법원에 들어갔다가 정동 삼거리에서 서로 갈라져 각자의 길을 떠났던 부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트코스로 많은 연인이 찾는 거리가 되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쪽으로는 아름다운 전통의 돌담으로 가려져 있어 아늑하고, 다른 편으로는 근대 건축물들과 정원들이 연속으로 나타나서 변화하는 풍경을 보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 길이 산책하기에 좋은 길로 느껴지는 이유에는 또 다른 도시 건축적 장치가 숨어있다. 사람 중심의 길이 되도록 차량 통행이 줄어드는 일방통행 길로 지정되어있고, 물길처럼 구불구불하게 길이 만들어져 차량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또한 차도와 인도의 높이도 맞췄다. 덕분에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돌담길을 따라 곳곳에 설치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인 아트 벤치와 바닥의 도자 타일이 이 길을 공원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덕수궁 돌담길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돌담길 #데이트코스
르네상스 양식의 파사드를 보존한 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고풍스러우면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르네상스 양식의 전면부와 현대식 건물의 후면부가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다. 사실 이곳은 여러 역사 깊은 건물들이 거쳐 간 장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이 있던 자리이자,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이 있던 자리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 시절 이와이 조자부로와 사사 게이치가 설계한 경성재판소를 광복 이후 대법원 건물로 사용하다가 전면의 모습을 보존하고 내부는 새롭게 변경하여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재탄생하였다.
보존된 건물 정면의 *포르티코와 본채 건물의 서로 다른 두 재료가 대비를 보인다. 어두운색의 벽돌 마감이 병풍을 쳐놓은 것처럼 배경을 만드니, 그 앞에 있는 밝은색의 화강암 포르티코가 두드러진다. 입구와 창문의 아치를 이루고 있는 섬세한 조각이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럽 건축 양식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 포르티코(Portico) : 건축의 앞면 또는 앞면의 출입구 부분에 설치된 열주랑(列柱廊,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부분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3층 높이의 높고 긴, 밝고 화사한 홀이 펼쳐진다. 이 홀은 1900년대의 보존된 건물의 *파사드 벽면와 2000년대 개장한 미술관의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 공간이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하다.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에서는 아치형 창문과 현대식 천창의 대비를 느낄 수 있다.
* 파사드(Façade) : 건축물에서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또는 그 모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61
월요일 휴무, 1월 1일 휴관
평일 10:00-20:00
주말 동절기(11-2월) 10:00-18:00 / 주말 하절기(3-10월) 10:00-19:00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르네상스양식
1910년대의 원형이 그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 학교 건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관리동과 서울 등기소 사이로 빠져나오면, 낮은 언덕 위에 르네상스풍의 저택처럼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길에서 보이는 모습은 건물의 뒷모습인데, 옆 언덕으로 올라가면 넓은 잔디마당과 함께 이 건물의 전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 건물은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의 동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1916년에 지어져 지금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남아 당시의 근대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다. 지붕 위에 얹어진 3개의 지붕창과 문 위의 *페디먼트가 인상적이다.
* 페디먼트(Pediment) : 서양 고전 건축 양식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붕이나 문의 위쪽에 사용되던 삼각형 모양의 장식
이 건축물은 화강석을 주재료로 중세 성채의 모습으로 지은 같은 양식의 학교 건물과 다르게, 벽돌로 지어진 보통의 주택 양식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정식으로는 2개층밖에 없지만, 다락 층과 반지하가 만나 총 4개 층으로 수직 구성이 드러난다. 건물이 옆으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중심의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기하학적으로 짜임새 있게 안정적인 비례를 가지고 있다. 창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직사각형 속에 정사각형을 한 번 더 구획하여 세세한 부분에서도 비례감을 살린 것을 알 수 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19
일,월 정기휴무 / 화-토 10:00-17:00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배재학당동관 #아펜젤러
돌담의 흐름을 이은 벽돌담 속 예술마당
#정동극장
정동길에 다다르면, 돌담길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붉은 벽돌벽이 나타난다. 열주로 살짝 띄워져 있는 벽돌벽 아래로 내부 공간에 대한 궁금함도 잠시, 커다란 네 개의 기둥이 힘있게 ‘정동극장’이라고 새겨진 *상인방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 정동극장은 근현대 예술정신을 계승하여 꾸준히 새로운 공연을 자체 개발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었던 ‘원각사’를 복원하는 이념으로 1995년에 개관하였다.
* 상인방(上引枋) : 건축물에서 창문이나 문 등의 개구부 상부에 수평으로 가로질러 놓인 부재
극장을 지하에 두고 그 위에는 넓은 야외마당을 조성했다. 바닥의 붉은 벽돌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벽으로 이어진다. 돌담과 수목에 둘러싸인 덕수궁의 안마당처럼 정동극장의 야외마당도 벽돌담과 수목으로 둘러싸여 마치 한옥 내부의 작은 정원 들어와 있는 것 같게 만든다. 전면 커다란 벽의 전수천 작가의 ‘혹성들의 신화, 놀이, 비젼’ 작품이 하나의 입체적 스크린으로,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19세기 판소리 명창 이동백 선생의 동상이 이 공간에 예술마당으로서 정동극장만의 색채를 더하고 있다.
정동극장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43
월요일 정기휴무 / 화-금 09:00-18:00
#정동극장 #벽돌벽 #예술마당
잊지 못할 아픈 상처가 새겨진 길
#정동공원 #고종의길
돌담과 붉은 벽돌의 역사적인 근대건축물들과 까페, 상점들이 어우러진 정동길을 걷다가 주한캐나다대사관 우측 언덕길을 오르면, 구 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이 남은 정동공원이 나온다. 정동공원 일대는 옛 러시아 공사관의 부지였다. 러시아 공사관 건물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이곳에는 하얀 3층 석탑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아관파천’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곳이다.
* 아관파천(俄館播遷) :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부터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아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
정동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까지 이어지는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피신했던 피난길이다.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길이 110m, 폭 3m의 담장을 설치하여 일반인들에게 2018년에 정식 개방되었다. 시야를 가리는 양쪽으로 쌓인 높다란 돌담이 이 길을 더 고요하게 만든다. 120m의 짧은 거리지만 일제의 눈을 피해 이동하던 고종에게는 이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고종의 길을 걸으며 한국의 아픈 근대사를 되짚고, 앞으로 우리가 회복하고, 지켜나가야 할 역사적 장소의 소중함을 마음속에 다시금 새겨보자.
정동공원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21-18
#정동공원 #고종의길 #아관파천 #구러시아공사관
이번에 함께 걸은 건축여행 코스는 바로 요기!
Visit Seoul × ArchiBear
건축물은 도시를 형성하고, 도시가 모여 국가를 이룹니다. 때문에 건축은 도시의 구성요소로서 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합니다. 비짓서울 x 아키베어의 '멋길따라 서울 건축여행'은 우리 나라의 수도 서울을 여행하면서 건축 문화 이야기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잘 지어지고 개성 있는 건축물은 도시에 새겨진 예술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역사와 개성을 가진 서울에는 감상이 될 만한 멋진 건축물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멋길따라 서울 건축 여행' 시리즈를 통하여 여행지로서의 서울, 나아가 일상 속의 서울에 숨어 있는 건축을 예술처럼 감상하는 경험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비짓서울×아키베어의 '멋길따라 서울 건축여행'은 건축 문화 여행 콘텐츠 기업 (주)하스스튜디오의 브랜드 아키베어(ArchiBear)와 함께 합니다.
본 코스는 보행약자(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 등)를 위한 코스입니다.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을 시 이용이 불가능 합니다.※ 보행약자 1명당 보호자 최소 1인 이상 동반 ※ 전동보장구(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등) 사용자의 경우 보호자 1인당 보행약자 최대 4인까지 동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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