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이 와중에 다가온 추석은 그래서인지 그 먹거리가 어느 때보다도 풍족하다. 추석 하면 생각나는 송편을 비롯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까지. 어렸을 때 친척들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던 그 추억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오래된 가게를 만나보자.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떡집이라고 하는데, 그 시초는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원떡집 은 낙원시장 일대에서 떡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수많은 떡집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이 집의 단골일 정도였다. 청와대에 행사가 있을 때면 낙원떡집의 떡들이 진상됐고, 기업체에선 행사가 있을 때면 이 집에서 떡을 몇 말씩 맞춰갔다. 먹어도 먹어도 또 들어가는 요상한 마력이 있는 떡. 이 집의 떡은 그 안에 들어간 소가 본연의 맛과 질감을 아주 잘 간직하고 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1974년
종로구 자하문로40길 77
02-379-6987
48년째 문을 열고 있는 동양방아간 은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뾰족한 꼭짓점을 가진 세모꼴의 건물은 누가 찾아와도 기준점으로 삼기 좋다. 처음 문을 열 당시 빚을 얻어 시작했었는데, 오랫동안 함께 동네에 모여 살았던 이웃들이 꾸준히 이 집의 떡을 찾아줬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워낙 기계들이 좋은 시절이라 떡 만드는 게 편한 요즘이지만, 방앗간 안쪽에는 예전부터 가래떡을 뽑던 기계가 아직도 남아있다. 아직도 새벽이면 힘차게 돌아간다.
1949년
종로구 북촌로 33-1
02-765-4928
1949년부터 3대를 이어오는 궁중 떡의 본가는 마치 최근 유행하는 작은 떡 카페 같다.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요즘의 트렌드가 한국식 여백의 미처럼 구현된 듯한 곳. 비원떡집 의 떡들은 이 시대의 젊은 층들이 흠뻑 반하겠다 싶을 만큼 꾸밈새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한데, 이는 처음, 이 떡집이 시작할 때부터 한 상궁에게 이어받았던 그대로의 모양새란다. 비원떡집은 식구 다섯 명이 매일 새벽 4시부터 재료의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함께한다. 진열장에 놓인 떡들을 보며 그 정성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다.
1969년
종로구 창경궁로 88
02-2279-1885
광장시장 한자리에서만 54년 2개월, 그 전부터 노상에서 반찬 장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광장시장 ‘ 순희네 반찬 ’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만큼 오래된 단골들이 많다. 최근에는 외국인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해외 배송까지 책임진다. 멸치볶음, 새우장, 게장 같은 한국의 서민 음식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명소가 되는 셈이다.
1946년
중구 동호로24길 7
02-2279-3152
사람의 혀만큼 요사스러운 것도 없는 세상에,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빵집이며 프랜차이즈들이 말 그대로 ‘명멸’해갔지만, 태극당 은 살아남았다. 태극당의 성공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오래된 것을 이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진열대를 살펴보면 이제는 기억을 더듬어야 생각이 날 법한 빵들이 가득 쌓여있다. 태극당의 명물로 꼽는 건 역시 ‘모나카’다. 아이스크림 겉을 바삭한 과자로 감싼 어릴 적 최고의 간식이었다. 태극당을 찾을 때마다 마치 어린 시절 그 빵집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라고 계단 한쪽에 적힌 문구는 아직도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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