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공원을 거니는 것처럼 전시장을 산책해 볼까요?
《손길 모양》은 모든 물질이 디지털화될 수 있는 지금, 손과 몸을 써서 작품을 만드는 노동의 가치와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시는 우리 주변의 ‘물질’과 그 물질을 담는 그릇인 ‘모양’, 그리고 물질을 자르고 붙여 모양을 만드는 작가의 ‘손길’로 채워집니다.
이은우 작가는 작업실로 출근하여 하루를 시작합니다. 한 시간 타이머를 맞추고 하는 작가의 ‘그리기’는 특별한 무엇을 그리겠다는 목적 없이 손이 가는 대로 그려내는, 반복되는 생활 습관과도 같습니다. 점과 점을 이어 선을 그어나가다 보면 갖가지 도형들이 연결되고 쌓여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완성된 작업은 '그리드(grid)'가 있는 모눈종이에 옮겨 그리고 도형에 어울리는 질감과 색을 입힙니다.
어린이갤러리 전체 공간은 사각의 그리드를 적용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작가에게 그리드는 사물의 크기를 정량화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그리기의 바탕이 되는 기준체계입니다. 규칙적인 하루의 일과로 자리 잡은 그리기 결과물들은 그리드로 규격화된 전시 공간 속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시각화됩니다. 드로잉 속 선과 도형은 지면을 벗어나 조각으로 입체화되기도 하고, 건축적인 형태로 확대되어 그 구조물 속으로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자리하는 크고 작은 조각들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손으로 물질을 재단하고 다듬어 형태를 만들고, 매일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과 조화시킴으로써 작가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가구 같기도, 장난감 같기도 한 조각의 모습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물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손길 모양》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그리기’와 ‘만들기’가 오랜 시간 쌓여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 전시가 그저 하루를 잘 시작하게 해주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평범한 노동이 알려주는 몰입의 경험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