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은 등산 초보자도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기 좋은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오후부터 새로운 서울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미적 감수성을 채우고,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이 코스를 따라 여행해 보자.
상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홍건익은 1934년 필운동 토지를 매입하고 2년에 걸쳐 건물을 지었다.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와 후원으로 이루어진 가옥은 사랑채 중문을 경계로 안채, 바깥채가 나뉘고 일각문을 통해 후원으로 이어진다. 특이한 점은 후원의 지대가 높아 그 단차를 이용해 빙고(氷庫)를 만들었다는 것. 2013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이후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과 아카이브 전시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주민들과 교류하는 유기적인 공간이 되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사찰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전통 건축물, 여기에 불교문화가 더해져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봄의 연등, 여름의 연꽃, 가을의 국화까지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 템플스테이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할 수도 있다.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쉼표하나’, 수행자가 되어 지혜를 일깨워보는 ‘스님과 차한잔’ 등이 있으며, 경복궁 책방길과 연계해 독서하는 시간을 향유하기도 한다.
윤보선 생가 일부를 개조해 만든 티테라피에서는 체질에 맞는 한방차를 추천받아 마실 수 있다.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율무를, 스트레스가 많고 눈에 피로가 쌓인 이에게는 구기자를 추천한다. 오랜 시간 달여내는 방식으로 만든 차를 음미하며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보자. ‘향으로 통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향통차는 티테라피의 본질과 닮아 있다. 카페 밖에 마련된 족욕 공간에서도 힐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인왕산 중턱에 위치한 경찰 초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0년 책방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건물 전체에 개방감을 부여해 인왕산의 경관은 물론 곳곳에 남아 있는 초소의 역사적 흔적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1층 서가에는 자연, 명상, 인생수업 등을 키워드로 선별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주문한 음료와 읽고 싶은 책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보자. 멋진 바위산과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문학적 사색에 빠져볼 수 있다.
파리 마레 지구에서 서점으로 출발한 오에프알파리 (ofr. Paris)는 스튜디오에서 출판사로 영역을 확장하며 파리의 창작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 공간이 서울 성수동에 이어 서촌으로 옮겨 자리를 잡게 된 것. 자유로운 예술가의 감수성으로 단독주택을 개조해 완성한 공간은 내부로 들어가면 허물어진 벽과 불규칙하게 진열된 상품들이 여행자가 자유롭게 공간을 거닐 수 있도록 돕는다. 예술 서적은 물론 감각적인 디자인의 대형 포스터, ofr 로고가 박힌 에코백이나 굿즈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멀리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지속 가능한 생활양식을 소개하는 라이프스타일 숍 메이크폴리오 서촌. 장식장에 가지런히 놓인 낯선 이름의 전통주들은 정성과 시간으로 빚어내 깊은 맛을 선보인다. 특히 고급스럽고 예쁘게 포장한 술이 시선을 끄는데, 산행 뒤 지친 나를 위한 선물로도 제격이다. 이곳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다양한 친환경 아이템을 큐레이션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흙으로 빚은 다기와 비건 비누, 돌을 가공해 만든 인센스 홀더 등 천연·리사이클 제품들로 동네의 대표 공간이 되었다.
무색무취의 심플한 분위기를 지녔으나 가장 개성적인 건물로 대표되는 서촌의 무목적빌딩. 빌딩은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채 건물 안에서 물 흐르듯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미로 같은 계단을 통해 4층 대충유원지를 향하는 동안 건물 틈으로 보이는 서촌의 모습이 흥미롭다. 커다란 커피머신은 뷰를 해칠 수 있어 과감히 생략하고, 매주 두 가지 원두를 골라 드립 커피로 선보이는 분명한 취향을 가진 공간이다. 야외 베란다에 앉아 인왕산을 감상하는 묘미도 선사한다.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가옥과 시인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주택가 골목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박노수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1937년경 절충식 기법으로 지어진 가옥으로, 1973년부터 2011년까지 박노수 화백이 거주하며 작업을 했다. 이후 사회 환원의 뜻을 품고 기증 협약을 맺어 2013년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작가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기획 전시는 여행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조금 이른 오후, 음악과 함께 술 한잔 곁들이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서촌블루스로 향하자.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도착한 2층, 문 밖으로 음악이 새어 나오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LP와 CD가 빼곡한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옛날 LP바처럼 신청곡을 적어 내면 음악을 틀어준다. 테이블 위 작은 메모지에 좋아하는 곡을 적어 주인장에게 전달해 보자.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서촌블루스에서는 흥겨운 포크 공연과 재즈 공연이 종종 열린다.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쉼터 같은 정자를 발견했다면 통인시장 서쪽 출입구를 통해 시장 구경을 시작할 수 있다. 불과 200m 길이의 시장에는 좌우로 80여 개의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어 삶의 구수한 향기를 전한다. 마니아 층이 두터운 명물 기름떡볶이는 물론 색색의 채소를 넣어 만든 전병, 어마어마한 길이의 닭꼬치 등 미식 투어도 할 수 있다. 참고로 2012년부터 운영 중인 도시락카페 통(通)에서 엽전과 빈 용기를 받아서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구입해 취향별로 도시락을 구성해 보는 것도 재미다.
산행 후 원기를 보충하는 의미로 삼계탕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1983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 문을 연 이래 토속촌은 40년 동안 한결같이 정성으로 끓여낸 깊은 맛의 삼계탕을 내놓고 있다. 여름이면 보양을 위해 찾은 이들이 문밖으로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 진풍경을 자아낸다. 이 집 삼계탕은 걸쭉한 국물에 야들야들한 식감의 닭고기가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인삼과 찹쌀 이외에 호박씨, 토종밤, 약대추, 은행 등 다양한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완성한다.
‘일독일박’은 ‘한 권의 책과 머무름’이라는 이름처럼 중정의 자작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프라이빗 한옥 스테이다. 좀 더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장소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고, 준비된 향초를 켠 다음 중정에 마련된 욕탕에 발을 담가보자. 중정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ㄷ자 형태의 구조적 묘미도 느껴볼 수 있을 터이다.
기존 나무의 결을 해치지 않고 낡은 한옥을 다듬어 완성한 진서재에서 머무는 하루는 특별하다. ‘볕이 깃드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진서재는 기와 틈 사이로,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의 지붕 틈으로 하늘이 고스란히 보인다. 가운데 다이닝 공간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침실과 각각 다른 분위기의 욕실이 연결되어 있다. 통인시장과 가까운 골목 어귀에 위치해 있어 어쩐지 하루 사이에 동네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누하동 안쪽의 작은 골목에 삶의 소박한 정서를 담은 한옥에세이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이곳은 일상적 경험의 소중함을 극대화해 주는 힘이 있다.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마당은 디딤석을 따라 꽃담을 거닐도록 이끈다. 라운지 공간에서는 난로의 온기를 느끼며 음악을 감상하는 힐링의 시간이 이어진다. 모던한 스타일의 욕조에서는 몸과 마음이 이완되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마당 한쪽에 심은 배롱나무가 분홍색 꽃을 피우는 계절이 되면 꽃말처럼 행복이 배가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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