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에서 하산할 때는 부암동 쪽으로 내려와 성북동에서 머문다면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곱씹으며 문인들이 머물렀던 장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운치 있는 한옥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행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도 있다.
번잡한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닿을 수 있는 길상사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절이다. 누구에게나 참선, 사색, 수행의 공간을 개방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현재는 당일형 프로그램만 진행하고 있으나 단 몇 시간의 일정에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한 사찰 예절교육을 받은 후 탑돌이, 가부좌 틀기, 참선, 차담을 차례로 체험해 보자. 특히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참선은 생사를 벗어나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참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릉 입구에 자리한 흥천사에서는 여러 문화재를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극락보전이다. 1853년 구봉 계장 스님이 지은 이 법당은 조선 말기 건축양식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문 위쪽 꽃무늬 조각과 기둥 위 용머리 장식은 화려하고도 뛰어난 건축 기술을 자랑한다. 조상들의 솜씨에 감탄한 뒤에는 스님과 마주 앉아 차담을 나눠보자. 불교문화에 대한 궁금증뿐 아니라 살아가며 겪는 갈등을 마음 편히 풀어놓을 수 있다.
북악산과 한양도성 사이 성북동 언덕에 자리 잡은 우리옛돌박물관은 1만 8182m²(5500평)에 이르는 부지에 석조 유물 1250여 점, 자수 작품 280여 점, 근현대 회화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환수유물관에서는 해외로 밀반출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갔던 문인석을 살펴볼 수 있다. 문인석은 장군석, 석수와 함께 능묘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조각으로 형상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진다.
이 별장은 한국 근대 문인 이태준, 정지용, 이효석, 이은상 등이 모여 문학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성북동 서쪽 골짜기를 따라 걷다 보면 담장이 십자(十) 모양으로 뚫려 바람이 쉽게 오가는 이종석 별장에 닿게 된다. 이종석은 조선 전기 수상교통의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새우젓을 팔며 부를 축적해 온 상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부호의 별장답게 화려한 팔작기와지붕과 섬세한 풍경 등이 인상적이다.
북악산 기슭에 자리한 북촌한옥마을은 조선시대 왕족, 고관대작, 사대부가 모여 살던 집터로 이곳의 한옥은 대부분 고상한 기와집이다. 본래는 한옥이 30여 호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1400동 정도가 자리한다. 먼저 북촌문화센터와 북촌한옥역사관에서 여정을 시작하며 마을에 새겨진 600년의 세월을 가늠해 보자. 그 후 금박공방, 소반공방, 매듭공방, 직물놀이공방, 단청공방 등을 방문해 전통의 미학이 깃든 공예 기술을 익혀봐도 좋다. 또 북촌마을서재에서 주민들이 기증한 1230여 권의 책을 느긋하게 읽어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북악산 능선을 따라 동북으로 뻗은 19km 길이의 도로를 여유롭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해발 342m 지점 북악팔각정에 이른다. 이곳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풍광을 연출하는데 특히 밤이 되면 불빛이 가득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추울 경우 전망대 중앙에 자리한 하늘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자.
1933년에 지어진 심우장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를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심우장이 5칸 남짓에 불과하고 여느 집과 달리 소박하게 구성된 것도 한용운의 올곧은 성정을 반영한다. 서재로 사용되었던 온돌방에 걸린 심우장이라 적힌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에 힘쓴 서예가 오세창이 쓴 것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차용했다.
소설가 이태준이 집필한 《문장강화》는 약 8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문인이 글 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읽는 고전으로 꼽힌다. 상허 이태준 가옥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머물며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을 탈고한 곳이다. 문학 단체 구인회의 터전이기도 했던 이곳이 1998년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탈바꿈했다. 찻집의 이름은 가옥의 당호에서 비롯됐으며 ‘여러 사람이 모여 산속의 집에서 책 읽고 공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학의 정취가 물씬한 마루에 앉아 따뜻한 생강차를 한입 머금어보는 건 어떨까.
자하손만두는 부암동 토박이인 박혜경 대표가 살던 집을 증축해 만든 곳으로 1993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 대표 메뉴인 떡만둣국은 시금치·당근·비트로 곱게 색을 낸 만두피가 일품으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매년 음력 1월 충청도에서 쑨 메주를 씻어 말린 뒤 좋은 소금물을 풀어 장을 담근다. 이처럼 정성과 시간을 들인 장은 한결 깊은 맛매를 자랑한다.
치킨 본연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계열사. 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면 강원도에서 재배한 수미감자를 통으로 튀겨 함께 내놓는다. 치킨을 찍어 먹는 소금 역시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6년 이상 묵은 신안 소금을 달달 볶아 유해 물질을 날린다. 이렇게 볶아낸 소금은 굵은 입자가 그대로 살아 있는 데다가 짜지만 달고 고소한 맛을 내 치킨의 풍미를 배가한다. 다음으로 손꼽히는 메뉴는 골뱅이 국수. 골뱅이 무침에 사과, 배, 해초류를 듬뿍 넣어 시원한 향이 난다. 국수를 비비지 않고 따로 먹는 것이 특징인데 심심한 듯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락고재는 130년 역사를 지닌 한옥을 무형문화재 정영진 옹이 개조한 곳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정자, 연못, 대청마루 등이 예스럽게 자리해 마치 과거를 거니는 듯하다. 객실은 안방, 건넌방, 정자방, 별채, 대문채로 나뉘는데 그중 정자방에서 다도를 즐기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1942년부터 약 60년간 자리를 지키며 문인들의 둥지가 되었던 보안여관. 서정주, 김동리 등이 머물렀던 이곳은 《시인부락》이라는 문학동인지가 탄생한 한국문학의 산실이었다. 현재는 보안여관의 전통을 이어받아 보안1942 건물 3~4층에 보안스테이가 들어서 있다. 보안스테이는 컬처 노마드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임시 거주의 형태를 구현해 낸다. 객실 내에서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대조를 이루는 북악산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곳곳이 현대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가구로 꾸며져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청동의 오래된 주택가 사이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정연재. 이곳은 1938년에 지어졌고 2019년 5월에 재단장을 마쳤다. 정연재라는 이름은 편안할 정, 인연 연, 집 재를 사용해 ‘이곳에서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인연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기를 기도한다’는 주인장의 마음을 담고 있다. 독채로 운영되어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기 좋으며 객실 내에 비치된 다기 세트가 대화에 운치를 더한다. 참고로 정연재의 시그니처인 노천탕은 동절기인 12월부터 2월까지 동파의 위험으로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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