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풍수에서는 기의 흐름을 중시해 ‘기운이 흐르는 길’을 산줄기라고 여겼다. 백두산은 그 기운의 시발점으로 백두산에서 흘러내려 금강산·설악산·오대산·속리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진 것을 백두대간이라 부르고, 이 척량 산줄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기가 흐른다고 여겼다.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이루어진 백두대간 가운데서도 한북정맥은 금강산 북쪽 분수령에서 갈라져 나와 한강 북쪽의 산들을 아우른다. 도봉산, 북한산을 지나 북악 멧부리에 백두산의 맥맥한 기운인 양 솟구쳐 수도 서울의 진산으로서 그 위용을 뽐낸다. 이러한 기를 끊기 위해 일제 침략기에 일본은 풍수지리를 역으로 이용해 우리 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북악산에 있는 촛대바위는 일제가 박은 쇠말뚝을 빼내고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운 이후 촛대바위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기의 흐름과 땅의 형세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해 설명하는 풍수지리는 한국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중요한 사상 중 하나다.
풍수지리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지켜주는 사신사를 세운다. 사신사는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로 불린다. 북악산은 사신사 중 하나다.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은 안과 바깥으로 각각 4개의 산인 내사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과 외사산(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에 둘러싸여 있다. 북악산은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산으로 불렸고,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하여 면악으로도 불렸다. 사적 제10호 및 명승 제67호로도 지정되었다.
경복궁은 북악산이 있음으로 해서 더 웅장하고 뛰어나게 보이는데, 그 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성계의 스승이자 불교계를 대표하는 무학대사와 성리학을 추종하는 정도전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정도전이 승리를 거두며 경복궁은 한양도성의 축성과 경복궁 전각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성리학적 해석에 바탕을 두게 되었다. 경복궁을 정면으로 보면 북악산과 근정전, 광화문이 보이는데, 우뚝 솟은 궁궐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은 사라지고, 광화문과 근정전만 보이는 절묘한 배치를 보인다. 이는 하늘에서 내린 모든 권력이 북악산을 통해 임금이 있는 대궐로 이어진다는 정치철학을 철저하게 적용한 구도다. 백두대간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의 웅장함에서 가까이 다가갈수록 궁궐의 웅장함으로 바뀌는 시점의 변화는 왕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며 그러한 상징성을 건축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었다. 이러한 배치는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되어 궁궐 등의 건축물에 장식되었다.
해치는 풍수지리의 비보(裨補)가 적용된 사례다. 조선시대에 경복궁에서는 크고 작은 불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적으로 외사산 중 하나인 관악산의 화기(火氣) 때문이라 했고, 화기를 누르기 위해 조정에서는 광화문 앞에 위치한 육조거리의 사헌부 앞에 해태를 세웠으며, 숭례문 부근에는 남지라는 연못을 조성했다. 해치라고 불리는 해태는 상상 속 동물로 불을 다스리는 물의 신을 상징한다. 현재 해태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사헌부 앞에서 광화문 양옆으로 옮겨져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