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의 손길이 담긴 공간
우리나라 현대 도시의 모습과 건축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현대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과 김수근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중업 건축가는 한국과 일본, 프랑스 건축의 다채로운 조화를 통해 한국 모더니즘 건축을 이끌었다. 김수근 건축가는 건축을 하나의 예술로서 디자인과 미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문화와의 결합을 꾀했고, 월간 종합 예술잡지 ‘공간’을 통해 건축문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우리나라 건축 거장 김중업과 김수근의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서울 건축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한국 전통 양식과 서양 주택의 조화
#김중업건축문화의집 #김중업 #모더니즘건축
‘김중업 건축문화의집’이 위치한 장위동 일대는 1960년대 대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된 곳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단독주택들이 어우러져 정겨운 골목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1970년대 지어진 이 2층짜리 단독주택을 1986년 김중업이 한국 전통 건축을 바탕으로 집 안 곳곳에 이국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리모델링했다. 이곳은 당시 중산층의 주택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되어 누구나 이곳에 방문하여 당시 주택 공간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적 분위기의 목재 마루 바닥에 발을 딛고 들어서면, 서양 주택의 상징인 벽난로가 있는 고풍스런 거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장의 커다란 샹들리에와 스테인글라스가 더해져 가옥을 화려하고 세련되게 장식하고 있다. 원목을 그대로 잘라서 만든 계단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견고하게 집의 중심을 지탱하고 있다. 김중업 건축가가 하나하나 치수를 재서 직접 제작한 벽돌벽을 따라 올라오면 단아한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김중업 건축문화의집’은 우리나라와 서양의 건축 양식을 주택 안에 조화롭게 담고 있다. 2층 거실은 한옥에 주로 쓰이는 우물마루*와 서까래 구조, 창호지가 발린 창문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그러면서도 화장실은 유럽풍으로 설계되었다. 1970-8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드레스룸이 딸린 건식 화장실로 빈티지한 옥색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우물마루 : 한옥에서만 나타나는 마루깔기 형식으로, 우물정(井)과 비슷하게 생겨 이름 지어진 마루형식.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으로 나가면, 김중업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수(水)공간이 마당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빗물받이를 타고 떨어진 빗방울이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500년 된 대추나무부터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가득한 정원은 어느 하나 그냥 자리한 것이 없다. 작은 온실까지 더해진 ‘김중업 건축문화의집’은 정원 안에 거대한 자연이 담겨있다. 집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했던 김중업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난다.
올해는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잘 알려진 김중업 건축가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중업은 일본과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김중업은 한국 전통 양식과 모더니즘을 결합해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렇게 탄생한 건축물로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문, 삼일빌딩, 서산부인과(현 아리움 사옥) 등이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로21나길 11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 ~ 17:00 (매주 일, 월요일 휴관) / 점심시간 12:00 ~ 13:00에는 입장 불가
입체적인 공간 속에 예술을 담다
#아라리오뮤지엄 #김수근 #구공간사옥
김수근 건축가가 창간한 종합예술잡지 ‘공간’과 같은 이름의 ‘공간 사옥’은 김수근이 직접 몸을 담았던 건축설계사무소다. 1972년 준공된 건축설계사무소는 2013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이하 아라리오뮤지엄)’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건물 위에 ‘공간(空間)’이라고 적힌 글자에서 이곳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은 대로변 앞의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건물의 시간과 함께 자라온 담쟁이 넝쿨이 건물 전체 외벽을 덮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며 건물을 변화시키는 이 넝쿨은 신비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어두운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의 크고 웅장한 외관과 대비되는 내부로 들어오면 공간이 좁게 느껴진다. 내부 공간은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휴먼 스케일*의 공간들이 이어져 있다. 획일화된 공간보다는 서로 다른 공간들이 여러 개 중첩된 형태를 지향하는 김수근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난다. 좁은 계단과 낮은 천장의 공간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넓은 공간으로 나올 때 공간감이 극대화된다.
*휴먼 스케일(human scale) : 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공간.
‘아라리오뮤지엄’의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마치 미로로 만들어진 작은 성 속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분절된 층마다 스킵 플로어* 방식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서로 다른 작품들을 전시한 공간들을 넘나들며 자신이 어느 층에 있는지 방향성마저 잃고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각기 다양한 형태의 공간들이 얽혀 있는 건물의 특징을 살려 세심하게 구성된 전시를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스킵 플로어(skip floor) : 바닥의 높이가 반 층 씩 차이 나도록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
분절된 공간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바로 수많은 계단이다. 공간을 여러 개로 쪼개면서 복잡해진 내부를 다양한 형태의 계단이 하나의 동선으로 매끄럽게 이어준다. 반경이 1m도 채 되지 않는 원형 계단은 좁은 폭 때문에 올라가면서 몸이 빠르게 회전한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삼각형 모양을 이루는 계단은 아찔한 광경을 연출한다. 입체적인 공간과 동선으로 건축미를 담아낸 ‘아라리오뮤지엄’에서 건축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한 김수근 건축가의 손길을 느껴보자.
한국 현대 건축 1세대를 이끈 인물인 김수근 건축가는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가 제자들을 길러냈다. 1931년에 태어난 김수근은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세운상가, 자유센터, 잠실 종합운동장, 경동교회 등을 설계했다. 그는 1966년 월간 종합예술잡지 ‘공간’을 창간하여 건축과 디자인, 미술, 연극, 영화를 한 데 담아내 건축을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로 승화하고자 했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3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 ~ 19:00 (매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