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는 SeMA 소장품을 매체 사이의 연결과 결합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고자 합니다. 포스트-미디엄/포스트-미디어 시대 매체를 매개로 예술가와 작품의 필연적 구조를 탐색하고,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가상과 현실, AI와 신체 등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조응하는 매체가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 매체/미디어의 다층적 구조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매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운데라는 의미의 메디움(medium), 사이에 있다는 뜻의 메디우스(medius)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매체는 매개, 매질, 영매, 연결로서 작품과 작가, 작품과 관람자, 관람자와 미술관을 이어내는 복합적인 연결의 층들을 구성합니다. 올드 앤 뉴, 옐로우 블록, 레이어드 미디엄, 오픈 앤드와 같은 전시의 키워드들을 클릭하듯 따라가면 지금/여기의 매체적 상황은 단수이자 복수인 중층적 구조로 존재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과 호르헤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의 제목처럼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의 막바지, 세계의 끝에서 예술가들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예술을 통해 묻고 있습니다. 매체를 선택하고 갱신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다양한 진폭을 넘나드는 고민 끝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듯이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연결을 꿈꾸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히 이어진 빈틈없는 연결이 아닌 이미 부분적이고 부서진 연결입니다. 예술은 바로 그 불완전하고 불충분함을 다시금 바라보라고, 그 잔해의 폐허 속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어떤 생명, 성찰, 저항, 희망, 상상 그 어떤 잠재적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