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ground. 자기 소개합시다.
윤기 둘!
윤기- 윤기!
구홍 넷!
구홍- 구홍- 구홍- 구홍!
‘캔버스에 원을 9개 그린 뒤 각 원을 다른 색으로 채울 것’,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해 캔버스에 들려줄 것’. 이와 같은 규칙과 조건 속에 그려진 회화 작품이 전시된다. 7월 3일부터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윤기와 구홍의 전시 《구홍과 윤기(Guhong & Yoonkee)》다.
‘윤기와 구홍’은 김윤기와 민구홍이 2023년에 결성한 웹 기반 음악 듀오 이름이다. 2000년 데뷔한 김윤기는(이하 윤기) 음악가이자 화가, 시인으로서 영국, 일본 등에서 국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민구홍은(이하 구홍)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동시에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과 코딩 언어 강좌 ‘새로운 질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개인 능력 밖의 ‘틈’을 메우는 식으로 서로의 활동을 도우며 10여 년 간 공연과 디자인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최근 듀오를 결성하게 되면서 그 활동의 첫 걸음으로 《구홍과 윤기》를 선보이게 됐다. 윤기와 구홍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 흐름에 따라 예술가 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처럼 규칙과 조건을 설계하고 그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프로그래머인 구홍은 자신의 주요 표현 양식인 코딩(cording)의 방법을, 윤기는 스스로 간단하고 편하게 임해 왔던 회화의 형식을 전시를 통해 가감없이 드러낸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구홍이 임의의 규칙과 조건 20개를 만들고, 윤기는 그 중 마음에 드는 항목들을 조합해 20점의 회화를 손수 그린다. 특기할 만한 것은 구홍이 설정한 규칙에는 붓터치에 대한 ‘코드’ 외에도, 캔버스에 음악을 들려주거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코딩의 방법은 아날로그를 외려 증폭시키는 인간적인 반전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윤기가 들려준 음악을 감상한 캔버스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캔버스는 자신이 윤기와 경제에 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의인화된 캔버스를 상상하게 하는 이들의 시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에 관한 낙관적인 사고실험이기도 하다. 구홍의 코딩을 경유한 윤기의 그림에서 음악이나 이야기가 읽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이외에도 윤기의 회화 4점과 구홍의 미디어 작품 2점이 추가로 전시된다. 구홍의 작품 중 하나는 <캔버스와 사랑에 빠지는 스무가지 방법>으로, 윤기의 회화에 적용된 코드들이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점멸한다. 관객은 이 코드들이 윤기의 각 회화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시공간에는 ‘윤기와 구홍’의 웹사이트(https://www.yoonkeeguhong.com/)에 첫 공개된 음악과 함께 별도의 미공개 음악이 무작위로 재생된다. 윤기와 구홍은 이번 전시에 관해 “규칙이라는 악보 위에 그려진 즉흥적인 멜로디, 한 알고리즘이 빚어낸 스무 개의 변수”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이라는 필연적인 기술에 순응하는 것이 무의지의 순종적인 자아의 인간을 만들기보다는, 풍부한 즐거움의 가능성을 열어 주리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여기에는 ‘급변하는 기술환경 앞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누릴 것인가’라는 발본적인 물음이 전제되어 있다. 이렇듯 《구홍과 윤기》는 기계적으로 생성한 틀 안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탄생한 결과물을 보여주며 미래의 예술에 대한 경쾌한 전망을 제시한다.